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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복싱을 통해 내면을 일깨우는 ‘샌드백 치고 안녕’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열일곱 번째 책은 박장호 시인의 <샌드백 치고 안녕>(삼인)이다.

“네가 왜 방어를 못하는지 알아?”

“실력이 부족해서요.”

“그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야. 겁을 먹으니까 펀치를 못 보는 거지….”

한국 서정시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화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시인의 성비는 남성이 압도적인데도 희한하게 그러하다. 김소월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장호 시인은 그런 면에서 귀한 존재다. 첫 시집 <나는 맛있다>에 등장하는 시편들은 대개 남성적이고 직설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근육질의 팔팔한 청년이기만 할 것 같았던 박장호 시인. 그가 벌써 불혹의 나이를 넘겼단다. 2년 전, 마흔 살이 된 시인은 문득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양분이 고갈된 화분을 본다. 시인은 곧바로 결심한다. 그는 곧바로 ‘슈가복싱클럽’에 등록한다.

박장호 시인은 이후 7개월간 복싱이라는 치열한 육체적 수련의 과정에 몰두한다. <샌드백 치고 안녕>은 복싱을 통해 내면을 일깨우고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거친 숨소리와 땀 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시인은 훈련 중에 스파링을 끝낸 한 중학생과 관장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는다. ‘겁을 먹으니까 펀치를 못 보는 거지.’ 시인은 이것을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낀다. 육체만 쇠락한 것이 아니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적 쇠락까지 본다. 나이를 먹고는 이리저리 세상이나 재면서, 용기 대신 ‘겁’이나 잔뜩 집어먹고, 그렇게 해서 삶으로부터 날아오는 ‘펀치’에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던 자신의 비루한 모습. 바로 그것을 말이다.

‘멕시칸 복싱’은 뒷다리의 발꿈치를 들고 체중은 앞다리에 싣는 것이 기본자세란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은 ‘언제든 앞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자세’다. 따라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유지할 수 없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 대목에서 나는 생각했다. ‘두려움’이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행동’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멕시칸 복싱의 저돌적인 기본자세를 삶에 장착하고 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뭘 잘하려고 하면 더 안 된다. 가장 보편적인 삶의 아이러니겠지만, 화가도 그렇다. 그림이 잘 안 되는 경우의 대부분이 ‘잘하려고 할 때’다. 두려움은 결국 욕망이 본질을 앞설 때 만들어진다. 그렇게 화가의 손에 들려진 붓이 욕망의 도구가 되면 사실 그 그림은 이미 끝장이다. 좋은 그림이란 욕심의 구현이 아니라, 순수한 예술적 몰두의 결과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미대를 다니던 시절 어느 날의 일이다. 유난히 그림이 되지 않는 날이었다. 결국 그림을 망치고 말았다. ‘에라이’ 하는 마음으로 그리다 만 캔버스에 과감하게 낙서를 해 버렸다. 하필 그때 교수님이 그 장면을 보셨다. ‘오늘 혼 좀 나겠구나’ 하고 쭈뼛거리고 있는데, 그림을 유심히 보시던 교수님이 놀랍게도 칭찬을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버릴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 없이 휘갈긴 낙서가 의외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샌드백 치고 안녕>을 쓴 박장호 시인의 복싱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확 휘갈겨 보는 마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책에 공감해 갔다.

<멕시칸 복싱>, 61x73㎝, Mixed media On Canvas

이번에는 유화 대신 목탄을 사용하기로 했다. 쉴 새 없이 뻗고 던지는 펀치의 운동성을 내 화폭으로 고스란히 옮겨오려면, 낙서처럼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는 목탄이 잘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링 위의 두 사람을 그렸지만, 사실 하나는 ‘나’이고 상대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기 내면의 두려움’과의 시합.

목탄으로 그리고 지우고, 물감을 칠했다가 또 지우기를 반복하며 나는 그림을 최대한 망치려고 해 본다. 나는 나의 캔버스 위에서 의도적으로 실패를 구현해 보고 싶었다. 용감함은 더 잃을 것이 없을 때 생긴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은 용감해지고 싶었다. 그림 속 복싱하는 사람의 뒤로 겹을 이루는 잔상들은 두려움에 맞서고, 실패와 싸우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나 전진할 수 있는 인간을 표현한다.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것은 결국 난타전이야. 네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느냐가 아니라 네가 끝없이 맞아 가면서도 조금씩 전진하며 하나씩 얻어 나가는 게 중요한 거야. 계속 전진하면서 말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야. 몇 대 맞지 않으려고 남과 세상을 탓해선 안 돼….” 완성한 그림을 앞에 두고 나는 영화 <록키 발보아>에 나왔던 이 대사를 떠올렸다.

박장호 시인이 해낸 . ‘안녕’을 이제 나도 한다. 내 인생의 비겁들아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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