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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공장’ 유시춘 작가가 직접 밝힌 영화 ‘1987’의 배경

유시춘 작가가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26일 방송된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임시 진행자로 나선 이정렬이 유시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이정렬은 유시춘 작가에 민주정치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입장에서 영화 <1987>의 의의를 물었고, 유시춘 작가는 “그 어떤 예술과 문학도 그 시대의 사회현실과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또 사회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1987>은 그 기능을 수행한 영화”라며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시춘 작가가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 서성일 기자

1987년 6월항쟁이 어떤 계기로 일어났는지 물음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고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국민들은 민주정부가 당연히 들어올 거라고 추론했다”며 “하지만 뜻밖에 전두환과 신군부 일당이 광주에서 학살을 감행하고 정권을 탈취했다”고 설명했다.

유시춘 작가는 “그로부터 약 7년에 걸쳐 정통성도 민주성도 역자성도 부재한 그 정권을 물리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열망이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설명에 따르면 그 중에서 청년 학생들이 앞에 섰고, 5·18 광주민주항쟁의 진상을 밝히려는 학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끌려갔다. 1986년 12월 당시 감옥에 약 6000여명에 달하는 양심수들이 갇혀 있었다고 유시춘 작가는 말했다. 당시 수많은 학생을 영장도 없이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광범위했는데, 언론에 재갈을 물려 누구도 보도하지 못했다고 유시춘 작가는 전했다.

대표적으로 박종철씨가 남영동 전철역 근처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다 물고문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그 전에도 이미 많은 박종철이 있었다”며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학생들, 수사기관에 불려갔다가 한강 철로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학생들 등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수사기관에 의해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죽음이 누적되어 일어났다.

1986년 11월 말에 애국학생청년연합 1400명이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건국대학교를 점거한 ‘건대사태’가 일어났다. 그 당시 모든 정부의 검열을 받는 모든 언론은 전두환 정권이 시키는대로 ‘공산주의 투쟁, 좌익 게릴라 투쟁’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박종철 사건 이후 시신이 발각되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유시춘 작가는 “참 얼토당토않고 초등학교 수준도 못 되는 대응으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대응을 내놓았다”며 “2~3일 머리를 맞대고 대응한 결과가 그렇게 유치짬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시춘 작가는 “역사는 간혹 우연을 통해 필연을 관찰한다”며 “우연으로 보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나며, 고문까지 조작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며 국민들의 공분이 하늘을 찔렀다”고 말했다.

유시춘 작가는 이어 “모든 국민들이 그 누구도 검사의 청부에 의해 발급한 영장에 의해서 체포구금되지 않는 헌법의 정신을 실천할 것을 요구했으며, 국민의 참정권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진행자 이정렬은 “(당시 박종철 사건의)고문에 가담했던 이는 5명인데 2명이 한 것으로 축소했다가 구치소 안에서 ‘사실은 3명이 더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고 덧붙였다.

유시춘 작가는 “5명 중 2명은 조력자에 불과했다”며 “감옥에서 계시던 이부영 선생과 교도관이 이 이야기를 듣고 개헌청원국민운동을 벌이던 야당에 전달할 건지, 학생에 전달할 건지 고민했다”며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신부님 조직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정렬은 “그 때 <뉴스공장>이 있었으면 박종철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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