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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연말정산] ‘고맙습니다’ 뜨거운 희생 정신 보여준 2017년 의인들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은 있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부근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구하다 부상을 당한 ‘낙성대 의인’ 곽경배씨가 남긴 말이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준 귀감을 준 2017년 의인들을 톺아봤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연합뉴스 독자 제공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탈출 도운 시민들

지난 12월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이들의 탈출을 도운 의인들이 있다.

이날 오후 3시 53분께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7분여 뒤 119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소방대는 눈앞에 보이는 불길을 잡느라 1시간 가까이 제대로 된 구조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때 고가 스카이 차 한대가 이 건물에 접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시민들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제천 카고 스카이의 이양섭(54) 대표는 불이 나자 아들 기현씨에게 전화해 “모든 일 제쳐두고 빨리 장비 끌고 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과 함께 회사 스카이 차를 화재 현장에 긴급 투입, 3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해냈다.

3층 남성 사우나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것은 이곳에서 오랜 기간 일한 이발사 김종수(64)씨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재 비상벨이 울리고 창밖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자 우왕좌왕하는 사우나 이용객 10여 명을 비상계단으로 신속히 유도해 무사히 탈출시켰다. 김씨는 혹시 대피를 못 한 손님이 있을까 봐 3층에서 5분가량 더 머물다 연기를 흡입, 건물을 빠져나온 뒤 병원 신세를 졌다.

4층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대피 중이던 이상화(71)씨와 중학생 손자 이재혁(15)군도 2층 계단 창문을 통해 많은 여성을 구출했다. 이들은 창문 너머에 갇힌 여성들을 발견하고, 창문을 아예 뜯어내 여성들을 한 명씩 끄집어냈다. 이렇게 이들이 구해낸 사람은 15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딩 벗어 쓰러진 노인 구한 중학생들. 민병두 의원 페이스북 화면 캡처



▲ 패딩 벗어 쓰러진 노인 구한 중학생들

지난 12월 11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시장에서 고령의 남자가 추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등교 중이던 서울 전농중학교 1학년 신세현(13)군, 엄창민(13)군과 2학년 정호균(14)군은 노인을 발견하고 달려갔다.

엄창민군은 노인이 숨을 쉬지 않자 어깨와 가슴 쪽을 강타해 그를 깨웠다. 할아버지를 끌어안은 엄군이 신세현군에게 “패딩을 벗어달라”고 요청했고, 신군은 기꺼이 자신의 옷을 노인의 몸에 덮었다. 그 사이 정호균군은 119에 전화했다.

근처에 있던 가게 주인이 “이 분의 집을 안다”며 할아버지의 가족들을 불렀다. 엄창민군은 어르신을 등에 업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정호균군은 엄군의 가방과 점퍼를 챙기면서 친구들을 도왔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안전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시험 기간이 임박해 시간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약자에 대한 배려와 봉사 정신을 보여줬다”면서 “평소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학생들로 주변의 칭찬이 자자하다”고 밝혔다.

세 사람의 따뜻한 행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이 선행모범학생상을,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민병두 의원을 대신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포항 지진 발생 당시 산후조리원 모습. SBS 화면 캡처

▲ 포항 강진 속에서 신생아 지킨 산후조리원 직원들

지난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강진이 발생했을 당시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준 이들이 있다.

SBS는 지진 발생 3일 뒤 포항의 한 산후조리원의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신생아실에 있던 직원들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침대를 붙잡고, 온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해당 산후조리원의 직원들은 경주 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해왔다. 이들은 ‘진동을 느끼면 여러 개의 카트를 동시에 끌어안아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아기의 머리를 보호한다’ ‘진동이 끝날 때까지 바닥에 주저앉는다’ 등의 지진 매뉴얼을 상기해 빠르게 대처했다.

산후조리원 간호조무사 임보라씨는 인터뷰를 통해 “당연히 사람이고 무섭지만, 일단 저도 엄마니까 (아기들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모든 선생님이 함께했다”고 말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충주 봉방동에서 발생한 화재. 충주소방서 제공

▲ 충주 봉방동 화재 당시 주민들에게 소식 알린 시민들

지난 11월 11일 충북 충주 봉방동 주택밀집지역의 한 포장업체에서 큰불이 났다.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때마침 기을 지나가던 충주의 의인들 덕분이었다.

김종복(55)씨와 그의 딸 김보슬(27), 딸의 친구 이슬기(26)씨는 맹렬하게 번지는 불길이 원룸 쪽으로 향하자 입주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문 앞에 걸린 원룸 임대 안내문에 건물주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이들은 건물주와 통화해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불길이 점차 번지면서 긴박한 상황에서 세 사람은 서로 층을 맡아 각 세대를 뛰어다니며 초인종을 누르고 불이 났음을 알렸다. 덕분에 불과 5∼6분 만에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이들의 선행은 당시 4층에 살던 이 할머니의 딸이 극적으로 구조된 사연을 주변에 알리면서 뒤늦게 확인됐다. 충주 지역 인터넷커뮤니티인 ‘충주사람 모여라(충사모)’에 해당 내용이 올라오면서 의인들의 선행이 알려졌다.

역삼역 흉기 난동 사건. KBS1 화면 캡처

▲ 역삼역 흉기 난동 사건 범인 제압한 시민들

지난 6월 26일 지하철 2호선 역삼역 5번 출구 앞에서 김모(63)씨가 ㄱ(57·여)씨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목과 가슴이 찔린 ㄱ씨는 피를 흘리며 차도로 도망쳤지만, 김씨는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ㄱ씨를 따라가며 계속 흉기를 휘둘렀다.

이 모습을 목격한 김부용(80)씨와 김용수(57)씨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김씨의 팔과 몸통을 붙잡고 칼을 빼앗아 멀리 던졌다. 김씨가 “죽여버리겠다”며 저항했지만, 두 사람은 강하게 제지했고 결국 출동한 경찰에 김씨는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상황이 종료된 후 김용수씨는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그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딸에게 ‘아빠 좋은 일 했다’고 알렸더니 오히려 왜 그랬느냐고 난리가 나 저는 혼만 났다”며 멋쩍게 웃었다.

한편 살인미수 혐의를 가진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5년 전 ㄱ씨가 운영하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후 주선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고 최근엔 전화 연락마저 피하는 것 같아 불만이 쌓였었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니말씨.

▲ 불길 속 이웃 구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지난 6월 10일 경북 군위군 주택 화재 현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니말(38)씨는 치솟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했다.

니말씨는 고국에 있는 어머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사고 당일 인근 농장에서 작업하던 니말씨는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현장으로 달려갔고, 집 안에 할머니가 갇혀 있다는 말을 듣자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그를 구해냈다.

이 과정에서 니말씨는 얼굴과 폐 등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3주간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며 여전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니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마을 어르신들이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준 데 대해 고마워했고 할머니를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불길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니말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불법체류에 따른 벌금 480만 원을 전면 면제받았다. 또 법무부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니말씨에게 치료 비자 승인을 했다. 보건복지부는 제3차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니말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니말씨는 외국인 최초로 LG 의인상을 탔고, 대구 수성대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표·최고위원 지명대회에서 김세연 사무총장에게 격려금을 받았다.

‘낙성대 의인’ 곽경택씨. 인벤 유튜브 방송 갈무리

▲ 낙성대 묻지마 폭행에서 시민 구한 의인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개찰구 부근을 지나가던 곽경배(40)씨는 낙성대역 개찰구 부근을 지나가던 중 30대 여성이 김모(54)씨에게 폭행을 당하며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 맨몸으로 폭행을 제지했다.

곽경배씨는 김씨가 갑자기 꺼내 휘두른 칼에 오른 팔뚝을 찔려 출혈이 심한 상황에서도 지하철역 밖으로 도주하는 김씨를 끝까지 쫓아갔고, 몸싸움을 한 끝에 인근 건물 화단에서 김씨를 붙잡았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함께 김씨를 제압했고, 이후 출동한 경찰에게 인계했다.

이 과정에서 곽경배씨는 오른팔 동맥과 신경이 절단돼 장시간의 수술을 받았지만 향후 2년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경배씨는 “내가 피하면 저 칼로 다른 시민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응했다”며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은 있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고 믿는다”고 담담히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낙성대역 의인’으로 불린 곽경배씨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 2017년 제2차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의 결정으로 정부로부터 의사자 인정을 받았다.

화재 속에서도 주민 지킨 경비원 양명승씨. MBC 화면 캡처

▲ 화재 속에서도 끝까지 주민 지킨 경비원

지난 3월 18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다. 아파트 배관을 교체하는 공사 중에 보온재에 불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인근 아파트 단지까지 연기가 번졌다.

경비원 양명승(60)씨는 화재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정전으로 인해 안내방송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명승씨는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15층짜리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그는 결국 호흡곤란으로 9층에서 쓰러졌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감동적인 사연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파트 주민들이 1층 경비실에 감사 쪽지를 붙이고 헌화를 하는 것은 잠깐이었다. 양명승씨가 숨진 지 이틀이 지난 20일 오전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의 감사 쪽지와 꽃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파트를 찍기 위해 몰린 취재진을 보며 일부 주민이 “언론에 노출되면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 게 뻔한데 책임질 거냐”고 말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한 ㄴ씨. TJB 화면 캡처

▲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승객 구한 의사들

지난 2월 24일 포항발 용산행 KTX 열차에서 승객 ㄴ(28·여)씨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대전역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역인 광명역까지 20분가량 남은 상황에서 승무원들은 다급히 “응급환자가 발생했으니 승객 중에 의료진이 있다면 17호와 18호 객차 연결 통로로 와달라”고 방송했다.

열차에 타고 있던 방승욱(40)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마취통증학과 교수는 방송을 듣자마자 동행한 김구현 전문의와 함께 ㄴ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 교수 일행이 도착해보니 이미 같은 병원 황현석 신장내과 교수와 인턴 1명이 있었다.

이들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함께 ㄴ씨의 상태를 살폈다. 쇼크에 이를 정도로 낮은 혈압을 올리기 위해 ㄴ씨를 눕히고 다리를 들어 올려주는 등 응급조치를 했다. 이들의 조치로 ㄴ씨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때쯤 열차는 광명역에 도착했고, ㄴ씨는 대기하던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ㄴ씨는 현재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승욱 교수는 “조금만 늦었으면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술실에서 매일 환자를 보기 때문에 당황하지는 않았고 동료들이 있어서 무사히 환자를 구할 수 있었다”며 “의사라면 누구나 했을 당연한 일”이다.

2017 바다 의인상 시상식. 사진 해양경찰청 제공

▲ 바다 표류한 선원·해녀 구한 선장들

지난 11월 20일 조업 중 사고로 바다를 표류하던 선원과 해녀들을 구해낸 어선 선장 김국관(47)씨와 이상권(51)씨가 ‘바다 의인상’을 받았다.

지난 2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김국관(47)씨는 “인근 어선에 불이 나 선원들이 바다로 탈출했다”는 해경의 지원 요청을 받고 곧바로 사고 현장으로 배를 몰았다. 그는 끌어올리던 배 그물을 칼로 자른 뒤 현장으로 가, 불이 난 배의 부유물을 잡고 바다를 표류하던 선원 7명을 모두 구조했다.

이상권씨도 올해 2월 제주 구좌읍 앞바다에서 갑자기 높아진 파도에 해녀 3명이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해경으로부터 전달받고 어선을 가지고 가 이들을 모두 구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도 맹장염으로 복통을 호소하는 10살 여자 어린이를 육지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희생정신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자로 선정된 김국관씨는 “누구나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처럼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며 “이번 상을 계기로 더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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