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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87’ 이한열 부축한 이종창 “최루탄 소리에 한열이 마지막 말 못 들어”

“극장에 두 번 갔는데 아픈 기억이 떠올라 눈을 감고 소리만 들었죠. 도저히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이종창 파주가람도서관 관장)

영화 <1987>이 관객수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1987>은 개봉한 지 2주도 채 되기 전인 지난 7일 관객수 400만명을 넘기며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며 시민들의 발걸음을 극장가로 부르고 있다. ‘스포츠경향’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던 이종창 관장(연세대학교 도서관학과 86학번)에게 당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이종창 씨가 부축하고 있다. 사진 경향DB

<이하 이종창 관장과 일문일답>

- 영화를 관람한 소감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영화 관람은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때의 대학 생활은 대학 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 역군이 되려고 대학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사회 현실이 새롭게 느껴졌고 그 현실속에서 대학생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사회 변화를 위해서 살아야 하나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해서 처음에는 데모에도 참석하지 않다가 현대사의 진실을 알아가며 집회에 참석해 돌을 던지게 됐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1987년 6월을 그저 과거로서만 기억하는 게 아니고, 현시대에 입각해 반추해보면 좋겠다.”

- 이한열 열사와는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였는지?

“원래 친분은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사회 발전을 위해 학생운동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동지였다. 서로 같은 뜻을 갖고 같이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민주화라는 게 나만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모두 잘 살자는 게 취지였으니 투쟁하는 동료가 위험에 처했다면 누구라도 도왔을 것이다.”

이종창씨가 지난 1987년 6월9일 경찰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던 자리(연세대 정문 안쪽)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이한열 열사의 등 뒤에서 들었던 말은 없었나?

“최루탄과 지랄탄 소리에 한열이의 마지막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전경들과 대치 중인 상황이기도 해서 경황이 없었다. 내가 그때 제일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은 전경들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였다. 정문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기둥 뒤쪽에서 전경들이 학교로 들어오기 위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빨리 한열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강동원 씨의 출연은 어땠는지?

“강동원 씨가 한열이 묘지에도 가보며 그 역할을 잘해내려고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을 보며 훌륭한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고민을 통해 용기를 갖고 영화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6월항쟁의 이야기와 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강동원 씨를 격려해주고 싶다.”

- 영화에 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없는지?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들은 사람도 있는데 민주화 투쟁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과 아픔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좀 알려졌으면 좋겠다. 박종철 열사 외에도 알려지지 않고 의문사를 당했던 분들이 많이 계신다. 영화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분들에 대한 생각도 이번 기회에 같이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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