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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트로트의 아로마’ 진해성 “홍대 트로트 버스킹으로 시작했어요”

“홍대에 나가기 전에 일주일을 고민했어요. 트로트를 알리고 싶었지만 반응이 싸늘할까 무서웠죠. 홍대에서 트로트를 부른 사람은 제가 최초잖아요. 그렇게 떨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트로트 가수 진해성은 국내 최초 홍대 트로트 버스커였다. 학창시절 유도 선수였다.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조타’와도 대등한 경기를 벌일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이후 그는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용음악과에 진학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트로트 버스킹은 부산 광안리, 해운대를 거쳐 서울 홍대까지 무대를 확장했다.

가수 진해성이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경상남도 진해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라 인터뷰 내내 사투리가 꼬리를 물던 진해성은 최근 ‘스포츠경향’에 ‘트로트의 아로마’가 되기까지 걸어온 행보를 털어놨다.

가수 진해성이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진해성 찾으려면 트로트 소리가 나는 데로 가봐”

야구를 하던 중에도 트로트 가수의 꿈을 잊은 적은 없었다. 노래자랑이 있으면 무대에 올라 트로트를 불렀고, 회식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아도 트로트만 불렀다.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는 운동을 그만두고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안 하면 너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그리고 대학에 갔는데 트로트를 부르는 학생은 저밖에 없었죠. 교수님도 발라드를 같이 부르라고 하셨지만 저는 트로트만 불렀어요. 덕분에 발라드, 팝송을 부르던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죠. 누가 나를 찾으면 선배나 동기들이 ‘진해성? 트로트 소리 나는 데로 가봐’라는 말을 할 정도로 트로트만 고집했어요.”

그때부터 각종 가요제에 나가 입상을 하기 시작했다. 상금과 트로피를 모아 아버지께 보여드리니 부모님의 반대도 응원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의 지지가 큰 힘이 되죠. 부모님뿐만 아니라 이모와 이모부도 제가 공연을 하면 시간 내서 와주시니 너무 고마워요.”

가수 진해성이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선명 기자

■“인생은 타이밍이죠. 홍대에서 명함을 받았어요.”

진해성은 거리 공연 출신 트로트 가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처음 소속사와 연이 닿은 것도 홍대에서 버스킹을 할 때였다고. 그가 홍대로 향하지 않았다면, KDH엔터테인먼트 김도희 대표가 삼고초려처럼 거듭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면 트로트 가수 진해성은 없었을 수도 있다.

“부산 광안리, 해운대와 서울 홍대에 장비를 들고 나가서 젊은 분들과 교류했어요. 트로트를 부르면서 나를 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죠. 트로트 가수들은 사실 방송에 나갈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밖에서라도 저를 알리면서 실력을 쌓고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2015년 겨울에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는데 한 여성 분이 명함을 주고 갔어요. 사실 이 업계에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여성 분을 안 믿었고 연락도 안 드렸죠. 며칠 뒤에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같은 여성 분이 공연 끝날 때까지 저를 기다렸어요. 지금 제 소속사의 대표님이었죠.”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진해성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트로트의 향기가 난다고 해서 ‘트로트의 아로마’라는 별칭도 얻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잊혀질까 걱정이죠. 10년, 20년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거예요. 트로트라는 가락이 잊혀지지 않고 대중들과 어울리며 함께 부를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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