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모두 울리고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를 쓴 정현(58위·삼성증권 후원)이 이제는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상대로 2년 전 추억 지우기에 나선다.
정현은 지난 20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남자 단식 3회전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와 경기에서 3시간 22분 혈투 끝에 세트스코어 3-2(5-7 7-6 2-6 6-3 6-0)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이덕희(1981년 윔블던)와 이형택(2000·2007년 US오픈) 이후 세 번째 메이저대회 16강 진출인데, 호주오픈에서는 정현이 처음이다. 또 정현은 톱10을 상대로 9번째 도전 끝에 첫 승리를 따내는 기쁨을 맛봤다.
정현에게 있어 즈베레프라는 이름은 참 특별하다. 정현은 1회전에서 알렉산더의 형인 미샤 즈베레프(35위·독일)를 만나 이겼다. 1세트를 6-2로 이겼고, 2세트도 4-1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가 기권해 48분 만에 경기를 끝냈다. 이날 경기를 한 알렉산더와는 3시간이 넘는 접전을 펼쳤는데, 막판 집중력 싸움에서 정현이 앞섰다. 5세트에서 알렉산더는 정현으로부터 단 한 게임도 따내지 못했다. 정현은 프로 데뷔 후 미샤에게 3승, 알렉산더에게 2승을 따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지지 않으며 즈베레프 가문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정현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한국 선수 사상 최초의 메이저대회 8강 진출이다. 그런데 그 길목에서 만난 상대가 만만치 않다. 바로 2년 전 같은 장소에서 정현에게 뼈아픈 가르침을 안겼던 조코비치다. 조코비치는 알베르트 라모스 비놀라스(22위·스페인)를 3-0(6-2 6-3 6-3)으로 완파하고 16강에 진출, 22일 오후 5시 정현과 8강 진출을 다투게 됐다.
부상 이후 아직 전성기 시절의 폼을 완벽하게 찾지 못했지만, 조코비치는 정현에게 여전히 큰 산이다. 메이저대회 우승만 12번을 차지했으며, 호주오픈 통산 최다 우승(6회) 선수이기도 하다. 커리어 면에서 정현이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기세라면 정현이 한 번 붙어볼 만하다. 지난해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한 뒤 정현의 기량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1~2회전을 손쉽게 이겼으며, 자신과 함께 차세대 주자로 꼽히던 즈베레프마저 잡았다.
무엇보다 정현은 조코비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2016년 호주오픈 1회전에서 정현은 조코비치를 맞아 분전했으나 기량과 경험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했다. 하지만 2016년은 정현이 한창 성장통을 겪던 시기였다. 현재 정현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반면 조코비치는 지난해 윔블던이 끝난 후 부상으로 한동안 코트를 떠났다가 올해 초 복귀해 감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폼이 좀 떨어진 조코비치와 상승세의 정현이라면 한 번 붙어볼 만하다.
조코비치는 3회전이 끝난 뒤 “즈베레프를 잡은 정현은 차세대 선두주자 중 하나로, 기본기가 굉장히 좋은 선수”라며 “몸도 좋고 경기력도 빼어나다. 열심히 노력하는 좋은 선수인데 이제서야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정현과 대결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세계 굴지의 선수가 인정할 정도로 성장한 정현이 조코비치를 상대로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