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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노숙자에서 억대 판매왕, 베스트셀러 강연자로…김성기의 인생역전 비결

대학로의 밤조차 IMF사태에 기가 꺾였던 1998년 초, 부쩍 늘어난 마로니에공원 노숙인들 틈에서 종이 박스를 이불 삼은 24살의 김성기가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복학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 갔다가 맞아죽는건 아닐까….

‘다단계’가 원인이었다.

김성기 작가가 저서 ‘억대연봉 판매왕의 영업기술’을 들고 있다.| 윤진근 기자 yoon@kyunghyang.com

95년 친구따라 갔던 교육장에서 눈이 뒤집혔다. 돈 버는게 저렇게 쉽다니…. 사람 잘 사귀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이 무기가 됐다. 두달만에 ‘신참들’ 앞에서 강의하는 위치가 됐다. 친지들을 끌어들이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달에 600~700만원씩 들어오는 돈다발의 중독성이 더 강했다.

결국 사달이 났다. 대표가 구속되고 업체는 부도 났다. 그동안 번 돈을 친지들에게 돌려줬지만 턱도 없었다. 학교는 물론 고향땅을 밟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를 몇달째, ‘젊은 애가 이러면 안된다’는 노숙인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집을 찾았다.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진정으로 사과하는 모습에 용서해 주더군요. 정말 후회합니다. 그런데 다단계를 하면서 얻은 것도 있어요. 제가 남들 앞에서 말을 꽤 잘하고, 물건을 파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어느날, 지하철 행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할 수 있으면, 뭐든지 하겠다 싶었다. 무작정 행상을 따라가 도매상에게 휴대용 선풍기 100개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지하철에서 말문이 턱 막혔다. 입도 떼지 못하고 사흘이 흘렀다. 이대로 내릴 것인가, 다음 칸으로 갈 것인가…. 마음을 다잡고 1개를 팔자, 한시간만에 100개가 모두 팔렸다. 자신감이 붙고 요령도 생겼다.

지하철 행상의 대박라인으로 꼽히지만 경쟁이 심한 1호선을 피해 2호선에 터를 잡았다. 2호선 주 이용층인 20~30대는 살지 말지 결정이 빠르다는 점에 착안해 한 객차에 머무는 시간을 1분 이내로 줄여 더 많은 고객을 만났다.

윤진근 기자 yoon@kyunghyang.com

2주일만에 2호선 판매왕이 됐다. 친구를 만나러 갈때도 물건을 챙겨 다니며 짜투리 시간을 이용했다. 하루 3~4시간 일하며 매달 400~500만원을 벌었다.

졸업이 가까와오자 성실함을 눈여겨 본 교수가 ‘축산등급판정사’로 추천을 해주겠다고 했다. 1년에 채 5명을 안뽑는 귀한 자리였다. 하지만 평생직장 대신 모험을 택했다.

당시 음식점 등 매장 보급이 늘고 있던 자판기 판매영업이었다. 대당 20~30%라는 수당이 짭짤해 보였다. 이곳에서도 두달만에 사내 판매 1등이 됐다. 한대라도 더 팔기위해 눈이 벌개 돌아다니던 어느날, 도저히 상권이 아니다 싶은 곳에 있는 점포의 주인할머니를 ‘꼬드겨’ 기어이 커피 자판기를 한대 팔았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밤을 꼬박 새웠어요. 아침 일찍 할머니를 찾아가 계약을 해지했죠. 자판기는 아니다 싶더라고요.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로 회사에 사표를 냈죠.”

그리고 찾은 곳이 보안시스템 업체인 S사 영업직. ‘1년안에 전국 1등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였다.

하루가 다르게 병원이 늘던 압구정동을 일터로 정했다. 신입 처지라 일은 없었지만 매일 새벽 6시 30분이면 압구정역에 내렸다. 어느날 한 건물에서 타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일건으로 못을 박는 소리였다. 도면을 몰래 베껴, 한걸음에 회사로 돌아온 후 CAD 작업으로 보안시스템을 그려 원장에게 달려갔다.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 그려온 도면을 보고 눈이 달라졌다.

인테리어 업자들과 원장들에게 입소문이 나며 일거리가 늘어났다. 주변 도움으로 당시 강남역 인근에 문을 연 10층짜리 쇼핑몰의 보안시스템을 통째로 계약했다. 이 건으로 받은 수당이 1680만원. ‘1년안에 1등’이라던 목표를 8개월만에 이뤘다.

H그룹 재직 당시 신입사원들을 상대로 웃음치료 강의를 하고 있는 김성기 작가.

“너무 빨리 해낸게 문제였어요. 다음 목표를 세우기도 전에 성취가 온 셈이니까요. 한동안 공허하더라고요.”

어느날 길을 가다 D리조트 콘도 영업직을 모집하는 안내가 눈에 띄었다. 3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입사를 했다.

이곳에서도 부지런함이 빛을 발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출근하는 ‘꼴’을 못보는 그에게 국장의 존재는 특별했다. 아무리 일찍 나가도 국장이 먼저 앉아 있었다. 점차 빨라지던 출근시간이 6시가 되자 드디어 첫 출근자가 됐다.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하루의 설계도 더욱 촘촘해졌다. 부지런함에 대한 윗사람들의 평가는 덤이었다.

3개월만에 팀내 1등이 되고 최연소, 최단기 팀장을 거쳐 1년도 안돼 억대 연봉자가 됐다.

업계에 그에 대한 소문이 퍼져갔다. 대기업 계열사인 H리조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거듭해 들어왔다. ‘대기업 면접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응했다. 면접장에는 사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빙둘러 있었다. 당시 H사가 D사에 뒤쳐지던 이유를 놓고 간부들과 격론을 주고 받았다. 입사할 마음이 없었기에 가능한 토론이었다.

며칠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D사에서 받는 연봉 1억 8000만원을 말했더니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연봉을 적게 받을테니 사내 모든 회의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역제안을 했다. 당시 35세. H그룹 팀장중 최연소였다.

‘실전 스피치’ 강연중인 김성기 작가

조기 진급 등 이곳에서 역시 탄탄대로가 열려있는듯 했지만 2015년 돌연 퇴사를 하고 인제에서 황태덕장을 열었다. 트럭을 몰고 전국 축제장을 돌아다니며 황태를 팔았다. 남들은 뭔고생이냐고 했지만 장돌뱅이들의 ‘현란한 멘트’를 직접 보고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난해 7월 어느날, 마음을 다잡고 진짜 하고 싶은게 뭔지를 써내려 갔다. 장사, 여행,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끝은 ‘책쓰기’과 ‘강연’이었다.

출판사에 자신의 영업경험을 담은 책 출판에 대한 제안서를 보냈다. 출판시장이 불황이라 초판 1000부를 찍자는 답변에 ‘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테니 2000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2000부를 찍었고, 순식간에 2쇄에 들어갔다.

컨설팅 회사에서 함게 일하자는연락도 왔다. 요즘은 강남센터에 영업프로그램 과정을 개설하고 후배들에게 영업마인드를 전하는게 일이다.

“제 강의를 들으면 누구나 월 1000만원을 벌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입니다. 한참을 돌아왔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한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김성기가 말하는 영업의 팁

- 약속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라. 늦으면 당연히 안되고, 약속보다 빠르면 고객은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자기 일을 본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에 가면,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는 누구나 놀라게 된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생각도 달리 한다.

- 복장을 제대로 갖춰라. 대학교때 붕어빵 장사를 했었다. 가장 먼저 오성급 호텔 셰프들이나 입는 옷을 샀다. 길 건너 경쟁자에 비해 유동인구가 10분의 일도 안됐지만, 새하얀 요리사복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두달도 안돼 매출은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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