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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지도자’ 머리를 키운 아빠, 그리고 두 삼촌

세라 머리 단일팀 총감독(30)은 평창올림픽에서 ‘두 얼굴의 여인’으로 불린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그는 평소엔 봄처녀처럼 웃음기가 가득하지만, 지휘봉을 잡을 땐 냉철함을 자랑한다. 자신의 하키 철학에 어긋날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도 코치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7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세라 머리 총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캐나다 출신의 젊은 지도자인 그가 남북 단일팀이라는 부담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에도 흔들림 없이 순항하는 비결이다. 머리 감독이 불과 26살이었던 2014년 9월 한국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랍기만 하다. 머리 감독은 지난 7일 관동하키센터에서 단일팀 훈련을 마친 뒤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 감독은 아이스하키 명문가 출신이다. ‘아버지’ 앤디 머리(67)는 과거 캐나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세 차례나 세계선수권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장이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HF) 명예의 전당에 오른 지도자이기도 하다. 두 오빠도 아이스하키 선수다. 자연스럽게 아이스하키에 입문했던 그는 지도자로 부족한 경험도 집에서 얻는다. 아버지 앤디는 미국 미네소타에 거주하고 있지만, 곁에 있는 것처럼 매일 딸과 1시간씩 통화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머리는 “여전히 난 올림픽과 같은 토너먼트에선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라며 “이럴 때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면 절묘한 답이 나온다. 6일 하루에만 세 차례 훈련한 것도 모두 아버지의 제안이었다”고 말했다.

지도자 머리를 키운 것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삼촌들의 몫도 컸다. 큰 인연이 없던 백지선 남자 아이스하키 감독(51)이 그 삼촌 중의 하나다. 한국 아이스하키에 초빙된 백 감독은 재능있는 여성 지도자를 수소문해 머리를 발굴했다. 백 감독은 남녀 총괄 디렉터로서 여자 경기가 있을 때면 관중석에서 초보 지도자 머리의 성장을 도왔다. 머리 감독이 기대했던 지도력을 발휘할 땐 조용히 사라지지만, 아쉬운 부분이 나올 땐 과감하게 라커룸으로 찾아가 귀띔했다. 그렇게 지도자로 성장을 거듭한 머리는 2년 전부터는 지도자의 품격을 쌓았다.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4부)에서 처음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백 감독은 최근 스웨덴과의 평가전을 현장에서 확인한 뒤 “대표팀이 정말 좋아졌다”고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머리가 잠시 흔들린 것은 예상치 못한 단일팀 논의가 확정된 지난달 16일.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편에서 이 소식을 들었던 그는 “올림픽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팀 추진은 충격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지도한 경험이 없는 북한 선수들과 지도자가 합류했으니 그럴 법 했다. 백 감독은 “머리는 강한 여성”이라며 신뢰를 보냈지만 급조된 단일팀이라 불안감이 컸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휴식일인 8일 강원도 강릉 경포 해변을 찾았다. 새러 머리(오른쪽) 총감독과 북한의 박철호 감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머리에게 행운이 따랐다면 북한에서 내려온 두 번째 삼촌 박철호 감독(49)을 만난 것이다. 머리 감독은 기꺼이 코치직을 수락한 박 감독의 배려 아래 총감독이 됐다. 박 감독이 드러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궂은 일이 필요할 때 뿐이다. 머리 감독이 박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직접 말이 통하지 않는 북한 선수들에 대해 “느슨해졌다. 이런 부분은 직접 혼내주시라”고 말하면 나서서 해결하는 식이다. 또 단일팀의 조직력을 다지려 선수단이 같이 미팅을 하고, 같은 밥상을 쓰는 것도 모두 박 감독의 양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덕분에 머리 감독은 남북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 평창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머리 감독은 “박 감독이 없었다면 단일팀을 제대로 이끌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처음 단일팀을 맡았을 땐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지만, 지금 돌아보니 환상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머리 감독은 이제 평창올림픽 첫 경기인 10일 스위스전을 손꼽아 기다린다. 일부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그 빈 틈을 북한 선수들이 빠르게 채우면서 전력 구성에는 큰 차질은 없다. 큰 무대라고 겁먹는 일은 없다. 목표인 올림픽 첫 승을 향해 나아갈 따름이다. 머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스위스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림픽에서 코치로 활약한 아버지의 조언 아래 우리 선수들의 루틴까지 이미 만들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설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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