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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가요평론가가 전하는 ‘故이호연 대표를 떠나보내며’

고 이호연 DSP 전 대표의 발인식이 18일 오전 7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됐다. 지난 2010년 뇌출혈로 쓰러진 고인은 오랜 투병생활 후 지난 14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그가 직접 발굴한 클릭비 전멤버 오종혁이 발인식 영정을 모셨다. 발인식에는 가수 옥주현, 김재경 등과 고인의 유족, 가까운 친지, DSP미디어 임원들이 참석했다.

故 이호연 대표. 사진제공 DSP미디어

故 이호연 대표는 DSP 미디어 창립자로 국내 가요계의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해 낸 제작자다. 그는 소방차, 잼을 시작으로 젝스키스, 핑클, 클릭비 등 1세대 아이돌을 배출했다. 카라와 SS501 등을 한류스타로 키워냈다. 지난 2011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로패를 받았으며 2015년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직 기자출신 홍성규 가요평론가는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이호연 대표를 처음 만난 건 그가 한밭기획의 소방차 매니저였던 시절”이라며 “해당 기획사 소속인 태진아씨에게 ‘소방차가 해체한다’는 제보를 받고 단독기사를 썼고, 매니저였던 이호연 대표가 전화를 해 난리가 났었다”고 회상했다.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술자리와 만남을 통해 친해진 두 사람. 홍 평론가는 이 대표를 ‘겉과 달리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홍 평론가는 그를 가요계 ‘미투 마케팅’의 선구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SM에서 H.O.T를 내면 한 명 더 붙여서 젝스키스를 냈고, SES를 내면 한 명 더 붙여서 핑클을 냈다”며 “이 대표는 이를 ‘미투 전략’이라고 밝혔는데 그의 전략은 광고 마케팅학에서 언급될 정도로 훌륭한 마케팅 기법이었다”고 평했다.

가요계 제작 환경에 이렇다할 시스템이 없던 90년대 이호연 전 대표는 안목 하나로 인기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켰다. 소속 가수였던 옥주현은 “핑클 시절 이호연 전 대표의 모든 기획이 방향성이 됐고 주도적으로 밀고 나갔으려 결국 히트를 쳤다”고 밝힌 바있다. 홍 평론가도 그의 심미안에 대해 ‘이효리’를 예로 들며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는 “지금은 스타가 된 이효리는 이호연 대표의 심미안 중 하나”라며 “이효리가 대성기획(DSP미디어 전신)을 찾아왔을 때, 그곳이 첫 기획사가 아니었다. 다른 기획사에 수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이효리의 진가를 발견한 건 이호연 대표였다”는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가 8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DSP 미디어는 지금쯤 가요계 3대 기획사가 됐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카라의 성공 이후 쓰러지기 직전까지 걸그룹 레인보우의 멤버를 손수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메이커’ 故 이호연 전 대표는 뛰어난 캐스팅 감각과 의리로 무장된 인맥으로 90년대 이어 200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에 빛을 더했던 독보적인 제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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