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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오동식 “이윤택, 기자회견 리허설에 표정 연습까지” 폭로

연극 연출가 이윤택이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후 그가 창단한 연희단거리패 내부에서 축소와 은폐를 시도했다는 내부 고발자가 나와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오동식은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선배를 공격하고 동료를 배신하고 후배들에게 등을 돌립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오동식의 글에는 이윤택 성폭력 파문과 관련한 연희단거리패 내부의 대응이 담겨 있다.

19일 오전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서울 명륜동 극장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에 대해 공개사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오동식에 따르면 연희단거리패는 지난 6일 최영미 시인이 종편 JTBC에 출연해 문단 내부 성폭력을 고발하는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는 “1년 전 동기인 한 연극인이 SNS에 이윤택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썼고, 당시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글 작성자를 만난 후 해당 글은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이윤택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한 기사가 나오자 연희단거리패 내부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오후 한 기자가 극단대표에게 이윤택 기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문자를 보냈다.

그는 “그날 오후 극단대표와 이윤택은 2시간 정도 단둘이 회의를 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우리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라고 답장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극단 수뇌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정황을 살펴보라”는 의견이 나왔고, 여러 단원들은 언론 보도와 SNS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의 폭로가 나온 후부터 상황이 변했다. 오동식은 서울 공연 중이던 연극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극단은 “공연을 안 할 이유가 어디 있냐”며 기다리라고 했고, 기자들이 30스튜디오에 나타난 다음에야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부산가마골 공연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부산가마골 극장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오씨에 따르면 당시 대책회의에서 ‘ㅈㅇㄱ’ 선배가 오씨에게 “본인의 입장을 밝히라고, 내부의 결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너무 놀랐다. 어떻게 나이는 같지만 후배에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이건 마피아나 조직폭력집단이나 하는 충성맹세 같은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고 싶었다”고 했다.

오동식에 따르면 대책회의에서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희단거리패 대표와 이윤택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피해자를 공격하는 발언을 했다.

연극계 성폭행 파문을 일으킨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오동식이 이윤택 성폭력 파문이 터진 상황에서 5월 서울연극제에 자신이 연출하기로 한 작품을 들고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 우리가 그렇게 잘못을 했어? 숨어 다녀야 될 정도로 잘못이야? 난 그 정도로 잘못한 거 없어!”라고 말했다고 했다.

오동식은 “이윤택은 고발자에 대해 모독과 모욕적인 언사를 해가며 우리를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리고는 앞으로의 공연 스케줄 논의를 시작했다. 자신이 연극을 당분간 나서서 할 수 없으니 앞에는 저와 같은 꼭두각시 연출을 세우고 간간히 뒤에서 봐주겠다면서”라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11일 또 폭로가 나오자 극단 단원들 소집명령이 떨어졌다. 오동식에 따르면 당시 이윤택은 울산의 피신처로 이동했고 단원들은 새벽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극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오동식은 “마치 우리가 어떤 나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정의감까지도 드러내며 연극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씨에 따르면 전직 단원이 가명으로 이윤택에게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고발하자 이씨는 “걱정 안 해도 된다”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발언까지 했다.

오동식은 이윤택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전에 리허설을 했다는 것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이윤택은 사과문을 완성한 후 기자회견 리허설을 하자면서 오동식에게 예상 질문을 하라고 했다. 오동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이씨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SNS에 “‘선생님 표정이 불쌍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러자 이윤택은 다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라고 이때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오동식은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며 “선생님은 이제 내가 믿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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