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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가 사라지고 있다…박정환 세계랭킹 1위 굳히기

지난 1일 막을 내린 제19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 박정환·김지석 9단, 신진서 8단, 목진석 감독(왼쪽부터)이 시상식 후 환한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대국에서 김지석 9단은 중국의 마지막 주자 커제 9단을 꺾고 5년 만에 한국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커제가 사라지고 있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던 ‘세계 바둑지존’의 맥을 한국에서 중국 쪽으로 돌려놓았던 커제 9단의 존재감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바둑계를 뒤덮었던 ‘황사’도 걷히고 있다.

커제 9단은 지난 2016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퉈자시 9단을 꺾고, 중국 기사 최초로 메이저대회 2연패를 기록하는 등 한국바둑을 위협할 절대강자로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제3회 바이링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천야오예 9단에게 패하며 기세가 꺾인 뒤 몽백합배·삼성화재배·LG배 등에서는 줄줄이 중도탈락하는 등 ‘세계 최강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말 치러진 제1회 신아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펑리야오 6단에게 3-2로 승리하며 가까스로 체면을 살리기는 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서는 국제기전에서 1승3패를 기록하며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올해 들어 해비치배에서 이세돌 9단에게, 하세배 결승에서는 박정환 9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 1일 끝난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13국에서는 김지석 9단에게 패하며 중국의 수문장 역할을 못했다. 자국 기전인 기성전 8강전에서도 판팅위 9단에게 패했다.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짧게는 1년, 길어야 2~3년 반짝하고 사라지는 중국 신예 강자들의 ‘조로 증세’를 그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2~3년 동안 한국바둑을 압도하던 중국의 위세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조용하지만 묵직한 한국의 반격에 만리장성이 허물어지는 분위기다. 그 중심에는 세계1인자로 복귀한 박정환 9단이 있다.

지난 1월2일 몽백합배에서 우승해 3년 만에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쥐며 최고의 페이스로 새해를 연 박정환 9단은 커제 9단과의 격차를 점점 벌리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바둑랭킹 전문 사이트 ‘고레이팅’에 따르면 3월3일 현재 박정환 9단의 랭킹점수는 3668점이고, 커제 9단은 3613점이다. 둘의 점수 차는 55점. 이는 박9단이 1위에 오른 후 둘 간의 최대 폭이다.

박9단은 한동안 랭킹점수에서 커제 9단에게 뒤지며 2인자 자리에 위치했다. 하지만 꾸준히 추격에 나서 지난해 12월3일 1위 자리를 탈환한 이후 국내랭킹과 세계랭킹 점수에서 최고점 행진을 거듭하며 세계1인자 독주체제를 굳혀 가고 있다.

특히 박9단은 올해 들어 이미 5억6000여만원의 상금을 챙기며 6억7000만원을 기록한 지난해 상금의 84%를 벌어들였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10억원을 뛰어넘어 지난 2014년 이세돌 9단이 세운 국내 최고 연간상금액 14억1033만원 경신도 노려볼 수 있다. 박9단이 한국바둑의 새로운 전설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승세에 대해 박9단은 ‘편해진 마음’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았다. 예전에는 큰 대회에서 지면 위축이 되고, 특히 좋지 않은 댓글들에 상처를 받아 다음 대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제는 그런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다.

박9단은 “몽백합배와 하세배, 여기에 농심신라면배까지 우승하며 기분 좋게 2018년을 열어 가고 있다”며 “국내 바둑팬들에게 더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승부를 벌이겠다”고 새해 각오를 전했다.

한편 박9단 외에 신진서 8단(3581점)과 김지석 9단(3570점), 이세돌 9단(3554점)이 세계랭킹 3·4·6위에 자리하는 등 한국바둑이 중국에 내줬던 세계최강국의 지위를 찾아오는 분위기다. 올해에는 한국바둑의 봄날을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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