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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Me too’ 암묵적 가해자들의 변명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Me too’ 열풍이 분 이후, ‘잘 나가던’ 남자들의 상담 요청이 잦아졌다. 며칠 전, 인연이 있는 공무원 한 명이 갑자기 찾아왔다. 억울하고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다고 했다.

“가해자예요?”

“전 그런 놈 아닙니다. 저도 피해자예요! 제가 모시는 OO가 여자들에게 스킨십이 많기로 유명해요. 제가 대학생 때부터 이분을 알았는데, 예전부터 손버릇이 나빴죠. 지금도 밀착수행하다 보니까, 저한테 하소연하는 여자 후배들이 많았어요.”

“믿을만한 남자 선배였군요.”

“OO가 손버릇이 나쁘지,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몸종이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는데, ‘OO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런 말 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되고요. ‘널 특별히 아껴서 그러는 걸 거야, 가까이서 사랑받는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해. 그럼 참아 질 거야. 소문이 나면 여자만 이미지에 해를 입어. 앞에서는 네 편들어도, 뒤에서는 ’여자가 곁을 줬겠지’ 남자들은 오해하거든. 난 네가 그런 상처를 받지 않길 바래.’ 이렇게 달랬죠. 사실 OO가 예뻐하고 아껴서 스킨십을 많이 하는 여직원들은 그만한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요. OO가 지명해서 좋은 자리로 옮기고, 급여도 높아지고요. 제가 나서서 여직원들 편이 되었다면, 제 목숨도 위험했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여직원들에게 도움 되는 조언을 솔직하게 잘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여자 분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한숨 쉬고 가죠. ‘싫어요, 하지 마세요.’ 좋게 말해보라고도 권했지만, 직접 하진 못하더라고요. 성폭행도 수차례 당했다고 하는 여직원이 있는데, 사실 저는 그건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성폭행이란 게 한 번 당했을 때, 완강히 거부하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차례 당했다는 건, 거부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은 본인 잘못도 있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장소엔 처음부터 가지 않았어야죠! 본인이 당한 일이니까, 직접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제가 어떻게 다 나서서 막아줍니까. 저도 이 자리까지 어떻게 왔는데, OO눈밖에나면 어떡해요? 그런데 ‘Me too’, ‘With you’까지 시작되면서 ‘암묵적 가해자를 고발 합니다’는 글을 누가 올렸는데, 저를 암시하는 글인 거예요. 억울해 죽겠어요. 저도 약자인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잘 위로해줬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요!”

남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고, 정말 억울해보였다. 물을 한 잔 가져다주니, 할 말을 속 시원히 하고 나니까,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제가 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아끼면 좀 만지고, 더 아끼면 성폭행해도 되는 거죠? 완강하게 거부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내 몸을 가지세요’하고 수락하는 거죠? 그 여성이 승진한 것이 본인의 능력에 의한 것은 아니고, OO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암묵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죠?”

“그건… 아니죠….”

“‘몸종이나 다름없어서’ 문제를 제기하면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라고 말하시는데, 더 힘없는 여성분들은 어땠을까요? 직접 항의하고 맞설 수 있다면 남자 선배한테 도움을 요청했을까요? 도움을 청했다가,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한숨 쉬고 갈 때,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된 성관계였던 거 아닐까?’의심하는 눈빛을 느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 거 같아요? 선생님도 직접 나서기는 힘드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조직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이 같이 방법을 찾아줄 수는 없었을까요? 내 아내, 나의 누이, 내 딸이 밖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주위의 ‘믿을만한 선배’들이 어떤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 ‘직접 좋게 말해봐’, ‘널 특별히 아껴서 그러는 걸 거야, 가까이서 사랑받는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해. 그럼 참아 질 거야.’ 이렇게 달래주면 충분할까요?”

일단 잘못된 행동을 하고 나면 그 행동의 결과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하고, 믿으려 애쓰고, 여러 이유를 들어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우긴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자기 합리화’를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인지 부조화의 원리’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생각은 어떤가? 과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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