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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헤어진 여친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어요

승훈 : 누나, 헤어진 여친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어요.

나 : 헤어진 여친이면, 지윤이? 너네들 작년에 헤어졌잖아. 지윤가 왜 널 협박해?

승훈 : 헤어질 때 안 좋게 헤어졌어요. 5년간 사귀면서 너무 많이 싸웠어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열 번도 넘게 반복했죠. 지윤이가 원하는 모습대로 제가 따라가질 못하니까 갈등만 깊어지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이지만 제가 매몰차게 헤어지자고 했어요.

나 : 지윤이는 헤어지길 원하지 않았고?

승훈 : 서른이 넘었으니까, 헤어지는 게 쉬운 일 아니죠. 결혼도 생각했었고요. 지윤이는 싸우더라도 서로 고치면서 만나자고 매달렸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헤어지는 서로에게 좋다고, 제가 모질게 잘랐어요. 그 뒤에도 연락이 여러 번 왔는데, 제가 차단했어요.

나 : 지윤이 상처가 깊겠네….

승훈 : 그런데 갑자기 메일이 왔어요. ‘미투’에 동참해서 일주일 뒤에 학교 SNS에 글을 올릴 거라고. ‘사귀는 동안 수 십 차례 성폭행 당했다. 학교 대선배와 사귀었기에, 위계에 의한 강요가 있었다. 이제 그는 강사신분으로 후배들을 가르친다.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냈다.’ 요약하면 이래요. 사귈 때, 당연히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어요. 이건 정말 음해예요. 막아야 해요! 무고예요! 무고! ‘미투’ 운동에 저도 찬성하는 입장이었어요. 정말 잘못한 남자들은 벌 받아야겠지만, 저 같은 피해자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저 이번학기에 처음으로 모교에서 강의 시작했어요. 저 학교에서 살아 남아야 해요! 변호사 고용하고, 법적 대응하겠다고 통보해야겠죠?

나 : 우선 진정해. 지윤이가 정말 너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승훈 : 저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겠죠!

나 : 지윤이 입장에서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둘밖에 몰라. 누가 억울하고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타인들은 몰라. 지윤이가 너에게 왜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해?

승훈 : 매몰차게 헤어진 거, 헤어진 뒤에 연락 차단한 거겠죠.

나 : 이미 넌 지윤이 마음을 알고 있네…. 5년이나 만났고, 헤어질 때 서로 노력해보자고 매달렸는데도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는 게 낫다’고 매몰차게 남자 친구가 떠났어. 못 잊어서, 연락했는데, 차단하고 받지 않아. 지윤이 심정은 어땠을까?

승훈 : 자존심 상했겠죠...

나 :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는 게 낫다’는 너의 판단을 지윤이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지윤이 입장에선 버려지고 배신당한 처참함 속에서 지난 1년을 보냈을지도 몰라. 지윤이가 정말 복수하고 싶었다면, 바로 실행에 옮겼지, 1주일 뒤에 SNS에 공개하겠다고 미리 통보할 필요가 있을까? 너는 지금, 지윤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 같아.

승훈 : …만나서 사과하면 될까요?

나 :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서로에게 예의를 다하는 건 정말 중요해. 헤어질 때 지윤이가 받은 상처가 너무 큰 것 같아. 이별할 때 미처 못 한 말들을 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차단당했을 때의 처참함…. 그 상처가 과거에 서로 사랑했던 좋은 기억들을 다 오염시킨 게 아닐까? ‘이 남자는 나를 정말 사랑한 게 아니었구나… 내 몸만 탐닉했던 건 아닐까? 그럼 내가 성폭행 당한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난 여전히 고통스러운데, 이 남자는 다 잊고, 잘 살고 있구나…’ 지윤이는 너에게 진심의 사과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승훈은 오랜 시간, 말없이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지윤을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그녀가 내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들어줘야겠다고 일어섰다.

승훈이 내게 다녀간 지, 2주일이 지났다. 학교 SNS에는 지윤의 글이 올라오지 않았고, 승훈이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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