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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분노하라. 용서하지 말라. 복수하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 삶을 망쳐놓은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저는 재산과 직장과 가정을 잃었습니다. 그 인간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고도, 저를 비웃듯이 잘 살고 있네요. 얼굴만 떠올려도 심장통이 생기고, 벗겨진 피부에 식초를 붓는 것 같은 통증이 온몸에 느껴집니다. 진통제를 먹어도 육체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요.”(42세 남성)

얼마나 괴로울까요. 심장통이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면, 육체의 질병으로 옮겨가기 쉽습니다. 마음의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가 폐렴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오래 전에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또는 ‘그녀’로 인해서 회복이 불가능한 것들을 잃었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죠. 키 161㎝, 52㎏이었던 저는 4개월 만에 43㎏이 되었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30분마다 잠에서 깼어요.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자, 저 스스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죠. ‘바보 같은 너는 먹을 자격도 없어.’ 일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어떻게 복수할까’와 ‘스스로 비난하기’에 썼습니다. 열심히 종교에 매달렸어요.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에 이르면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저는 용서 못해요. 그러니 신께서도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기도하기를 포기했죠. 차라리 말을 말지, 용서하라고, 잊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상처 받았어요.

“분노하며 원한을 품는 것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미국 작가 말라키 맥코트가 한 말입니다. ‘그’또는 ‘그녀’는 저의 존재조차 잊은 듯 잘 살고 있는데, 저는 스스로 독약을 원샷하고, 상대가 망하거나 죽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죠. 과거의 지옥에 갇혀서 저승사자 꼴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저였어요. 나를 배신한 사람의 불행을 바라며 내 시간과 감정을 쏟은 건, 복수가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이었어요.

분노는 우리를 과거에 덫에 갇히게 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분노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옮겨와서 자존감을 파괴하고, 현재에 대한 판단력을 마비시킵니다. 대인관계 공포증도 생기죠.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미래의 문은 열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분노는 무조건 참아야 할까요? 분노를 참는 건 고통을 더 증폭시킵니다. 깨어있을 땐 호흡곤란, 혈압상승, 심장 박동수 증가, 육체적 고통을 일으키고, 겨우 잠들면 램수면 상태에서 악몽에 시달리느라 근육도 쉬지 못해서 근육통이 생깁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우울이 심해지면 자아기능이 급격히 낮아져서 실수를 연발하고,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킵니다. 집중력, 판단 능력, 감정 조절 능력, 미래예측 능력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상대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면,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고통과 분노의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당연히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인정하세요. 분노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가까운 관계였다면(특히 가족이라면) 고통은 크고 오래 갑니다. 관계의 죽음도 죽음입니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고 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어요. 단, 자기 비난은 금물입니다. 분노를 없애려는 무모한 노력을 포기하고, 그 분노를 자연스런 감정으로 받아들이세요. 하지만, 이미 다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분노가 행동이 되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내 인생에 더 큰 상처를 낼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의 하찮은 존재로 잊어버리세요.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는 건, 그를 내 기억 속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가치 없는 인간을 기억의 쓰레기통에 쳐 넣고 불태워 없애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복수입니다.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 질 때, 용서는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억지로 분노를 참고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진짜 복수는 신의 영역이고, 신이 대신 해 주는 날이 옵니다. 신의 시계는 우리가 원할 때 움직이지 않고 늦게 움직일 뿐입니다. -다음주 계속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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