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박상미의 고민사전] 매일 후회하는 당신께

“그 때 거기 가지 말았어야 해, 그 때 그 사람 만나지 말았어야 해, 그 때 그 사람 믿지 말 았어야 해, 그 때 결혼하지 않았어야 해, 그 때 A말고 B를 선택했어야 해, 그 때 거기 투자하지 않았어야 해….”

매주 빠지지 않고 들어오는 상담이 지난 일에 대한 ‘후회’입니다. 과거에 내가한 결정을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 성급한 선택으로 인해서 오랜 시간 고통을 겪기도 하고, 내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간을 다시 그때로 되돌릴 수 있다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얼마 전,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습니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2년 동안 이혼소송을 하느라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였어요. 동창들 중에 학력도, 외모도, 경제력도 가장 뛰어나서 늘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입니다. 재산 분할, 위자료, 양육권 싸움은 2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재판은 길어지고 있었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10kg이상 몸무게가 늘어 있었죠. 대기업 입사 18년차, 최연소 여성 부장으로 인정받던 친구는 지난달 휴직계를 내고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너무 지쳐서 재판도 그만하고 싶어. 재산 분할도, 위자료도, 양육권도 다 포기하고 싶어져. 이 사람을 만나지 말 걸, 이 사람과 결혼하지 말 걸... 처음엔 이게 후회됐지. 선택을 잘못한 나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했어. 어쩌면 남편보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해서 목숨 걸고 재판을 시작했는데, 2년간 재판을 하는 동안, 나는 더 병들었어. 이혼소송을 하지 말 걸, 그냥 미련 없이 헤어질 걸... 2년 동안 과거의 일들을, 서로의 치부를 낫낫이 벗겨가며 과거의 지옥 속에서 살았어. 나를 불행하게 만든 그에게 복수하고 싶었는데, 결국 내 인생만 허비했어. 우리는 2년 전에 이미 회복 할 수 없는 관계였어. 깨끗하게 정리하고, 원만하게 합의하고, 미련 없이 헤어졌어야 해. 복수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복수는커녕 나는 더 많은 걸 잃고 말았어. 깨끗이 내려놓고 정리했었어야 했어. 그러면 2년 동안 내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회복할 수도 없는 과거에 갇혀서 현재를 망쳤어. 너무 후회돼.”

말없이 듣던 저는, 친구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 워도/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화끈 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는다/그렇게 소중했던가/그냥 두고 올 생각은 왜 못 했던가/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삶 깨기 전에는 삶은 꿈이다.

흘러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전생’과 같아요. 후회하면서 과거 속에 갇혀 사는 건 ‘전생’에 갇혀서 사는 것과 같고, 꿈속을 헤매는 것과 같죠. 꿈 깨기 전에는, 꿈을 삶이라고 착각합니다. 꿈에서 깨서 ‘오늘’의 삶을 살아야 해요. 2년 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하지만 헛되지 않아요. 지금 얻은 깨달음 덕분에, 앞으로는 후회 없이 나를 사랑하면서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