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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 내 삶의 성적표는 남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매기는 것

방송에 출연 하면서 알게 된 A로부터 연락이 왔다. 꼭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A가 매스컴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고 싶었고, 그의 변화가 궁금했다.

3년 가까이 알고 지낸 A는, 세상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속상해 했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운이 안따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A는 요즘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를 설명하느라, 식어가는 밥에는 관심이 없었다. A의 속도에 맞추다가는 밥을 다 남길 것 같아서, 눈치껏 먹어가며 맞장구를 치다가, 나도 곧 밥 먹기를 포기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본분임을 늘 잊지 않으려 애쓰지만, 과장된 자기과시가 길어지자, 내 속에서도 살짝 ‘짜증 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A의 발화속도와 분위기에 맞추자면, ‘축하한다, 대단하다’는 말을 계속 추임새로 넣어주어야 했지만,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자신의 활약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지에 대해 쏟아내던 A는, 일어설 무렵 갑자기 “고민이 있다”며 나를 끌어 앉혔다. 창밖에는 냉기를 품은 밤비가 귀가를 재촉하고 있었다. A의 말은 이랬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질투가 많아요. 처음에는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뒤에서 다 내 욕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좀 유명해지고, 돈도 버는 것 같으니까….”

“그게 누구예요? 직접 들은 적 있나요?”

“꼭 직접 들어야 알아요? 가까운 이가 전해줄 때는 근거가 있지 않겠어요?”

A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종종 SNS에 올리는 글을 보고 알고 있었다. 3~4회는 자기 과시 포스팅, 1회는 ‘나를 모함하고 헐뜯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포스팅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사실 A가 아니어도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예전 같았으면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주변의 오해는 절로 풀릴 것’이라고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진심으로 그를 돕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당초 주변의 오해와 그릇된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생활 하느라 바쁜데, 주변에 알던 사람이 갑자기 좀 잘나간다고 해서 시샘이나 할 여유는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동물이고, 남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걸 인정하고 나면, 남을 두고 왈가왈부 할 일도, 남이 나에게 어떤 평가를 하는지에 일일이 신경 쓰며 속상할 일도 없어진다.

타인의 성취는 인정하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와 평판의 균형을 놓치기 쉽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성취’보다 ‘더 큰 평판’을 기대하지만, 대개 주변의 반응은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타인의 인정을 확인하고 싶어서, 내 입으로 나의 성취를 말하고 싶어지고, 말하다보면 남들의 평가가 두려워지고, 그 갭을 혼자서 ‘남들이 나를 헐뜯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속상한 만큼, ‘앞으로 더 성장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려워진다. 자기 자랑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즐거워서 떠벌리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이런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성취와 평판의 균형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성취에 대한 유혹은 넘치는데 반해 성취에 딱 맞는 평판을 즐길 줄 아는 이는 드물고, 지혜를 전해주는 사람도 드물다. A가 안쓰러웠던 건, 지난 날 내 모습을 그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논어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공자가 말했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헌문32) 진짜 능력 있고, 인정할만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세상에 드러난다. 나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하며 노력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평판은 자연히 따라오는 게 아닐까? 내 삶의 성적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이 매기는 것이다.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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