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여성 인권 어긋난 교내 포스터에 ‘포스트잇 시위’ 벌인 학생들

인천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여성 인권에 어긋나는 교내 포스터에 대해 ‘포스트잇 시위’로 항의했다.

독자 ㄱ씨 제공

2017년 하반기, 해당 학교의 생활안전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두발 규정 교칙 준수’를 독려하기 위해 포스터를 제작했다.

포스터에는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스틸과 함께 “이 남학생의 표정이 바뀐 이유는 뭘까요?”라는 질문이 적혔다. 그 아래에는 “A.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학생 B. 머리를 풀어헤친 여학생”이라는 선택지와 “정답은? 여러분은 A가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B가 되고 싶은가요?”라는 문장이 이어졌다.

머리를 묶은 여주인공의 사진 옆에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설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시절 좋아했던 ‘그 소녀’에 도전해보세요~”라는 독려의 글이 써졌다.

2018년 4월이 되고 해당 포스터에 여러 장의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색색의 포스트잇 위에는 학생들이 또박또박 적은 글이 담겼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여성은 관상용 꽃이 아닙니다” “여성은 남성의 기호를 위해 머리를 묶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Girls Can Do Anything” “우리의 권리를 더 이상 침해하지 마세요” “여성은 남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우리를 ‘상품화’ 시키지 마세요.(떼지 말아주세요) 우리의 품위, 명예. 어디 있습니까” “페미니즘을 응원합니다” “그러면 남자도 장발에 포니테일 해라!”

‘포스트잇 시위’에 감명받은 재학생 ㄱ씨는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그는 “우리 학교 학생부에서 애들 머리 묶고 다니라고 붙였는데 1학년 애들이 포스트잇 붙인 거 진짜 멋있다”고 덧붙였다. 이 글은 4만90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고, 2만1000명 이상이 공유했다.(20일 오후 6시 기준)

독자 ㄴ씨 제공

또 다른 누리꾼 ㄴ씨는 20일 “현재 이 학교 재학생인데 언제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다시 보니 저 포스터 옆에 이런 공지가 붙어있는 걸 보고 사진 올린다”며 ㄱ씨에게 한 장의 사진을 공유했다. 그 안에는 의외의 내용이 있었다.

학교 측은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교칙을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라는 부제 아래에 “포스터의 내용이 양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위배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글이 적혔다.

교사들은 공지문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이 담긴 포스트잇을 보고 미처 고려되지 못한 양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점이 간과되었음을 인식하였다. 학생들이 제시한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며 “두발 규정 준수란 주제에 집중하다보니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양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대한 여러분들의 건강한 시선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사실이 저희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문장은 진하게 강조하기도 했다.

포스터에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어요’라는 부제 아래 “저희 생활안전부 교사들은 여러분들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고 있으며 여성 인권 보호와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학생 눈높이에 맞는 생활지도 방법에 대해 여러분들의 참신하고 멋진 의견을 제시해주길 당부드린다”는 반성의 글이 담겼다.

현재 교내에는 문제가 된 포스터와 교사들의 공지문이 함께 붙어있다. 포스트잇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스포츠경향에 사진을 제공한 ㄱ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포스터에 반박해주는 학생들이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ㄴ씨는 “저를 포함한 저희 학교 학생들은 모두 포스트잇 붙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본인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붙이고 있다”며 “학교 측의 대처에 대해서 저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게 되어 여성 그리고 학생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