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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는 여중생 “멍 때리다 선생님께 혼난적도”

“멍 때리는 게 내 적성인 듯, 잘하는 걸 찾아내 행복하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주최로 ‘제3회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7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영예의 우승 트로피는 교과서 던지기 퍼포먼스를 한 뒤 멍을 때린 중학교 2학년생 양희원(성남 은행중)양에게 돌아갔다. 파란색 체육복 바지에 교복 상의 차림을 한 양희원 양은 멍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았다.

양희원 양은 “학원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선생님께 지적받은 적도 있는데, 아무래도 멍 때리는 게 내 적성인 것 같다”면서 “잘하는 것을 찾아낸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무표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2018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성남 응행중학교 2학년 양희원 양이 대회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구호 없는 몸풀기를 마치고 경기에 돌입한 ‘선수’들은 봄치고는 썰렁한 날씨와 가끔 떨어진 빗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량을 뽐냈다.

대회장 한쪽에는 선수들이 직접 참가 이유를 적어넣은 게시판이 설치됐다.

한 참가자는 ‘임용고시 생활 4년째인데 독서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임용고시 수험생, 공시생, 취준생을 대신해 하루만 공식적으로 멍 때리겠다’고 적었다. ‘경찰관의 뇌도 쉬어야 합니다’, ‘이유를 쓰라는데… 멍…’이라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매년 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택배 기사 김덕관(28)씨는 “하루 15시간 이상 밥도 못 먹고 쉬지도 못하며 일하는데 이제 좀 쉬고 싶어서 출전했다”고 말했다.

‘공식적 멍때려도 되는 날’. 연합뉴스,

경기가 중반으로 치닫자 탈락자와 기권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졸거나 자면 안 되고 웃거나 노래를 불러도, 잡담을 나눠도 실격 처리된다.

딸과 함께 출전했다가 약 50분만에 기권한 박보선(여)씨는 “가만히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요”라며 깔깔 웃었다. 그는 “아이 셋 키우면서 쉴 시간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멍 때리면서 쉬려고 참가했다. 머리가 깨끗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너른들판에서 ‘2018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를 뜻하는 속어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끊임없이 뇌에 자극에 밀려드는 현대사회에서 ‘멍 때리기’는 효과적인 뇌의 휴식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제1회 멍 때리기 대회’를 맨처음 개최한 웁쓰양(39·예명)과 저감독(34·예명)(프로젝트 듀오 전기호)은 “현대인들이 빠른 속도와 경쟁사회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 대회의 취지라고 밝혔다.

‘멍때리기 대회’는 전국에서 개최 요구가 밀려들었으며, 중국에까지 진출했다. 이후 ‘멍때리기 대회’는 연중 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초등학생부터 회사원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개성 넘치는 복장과 소품을 들고 나왔다.

주최 측은 90분 동안 15분마다 체크한 선수들 심박 수와 현장에서 받은 시민 투표 결과를 종합 평가해 우승자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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