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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우리 부모님은 도대체 왜 저러실까?①

몇 해 전, 70세 김숙영씨(가명)와 10주 동안 만나서 상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숙영씨의 화병과 우울증이 갈수록 깊어져서, 4남매가 가족회의 끝에 모시고 왔어요. 4남매는 이구동성으로 ‘어머니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우울해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롭다’는 거였어요. ‘상담 같은 거 필요 없다’며 거부하던 숙영씨는 ‘그래, 죽기 전에 마음에 있는 것을 실컷 말이라도 해보자!’ 생각하고 용기를 내었다며 장남과 함께 찾아오셨어요. 처음 뵈었을 때, 그분은 자녀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너무 많았어요. 자식에 대한 감정을 말할 때는,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렸고, 눈물을 닦는 손도 함께 떨렸어요. 맘이 너무 아팠죠. 그런데 3~4주가 지나면서 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4남매는 효자, 효녀였어요. ‘이렇게 효자, 효녀인데 뭐가 그리 서운하실까? 본인의 상처가 문제구나…’ 궁금해졌죠.

폭력적인 남편과 사느라 평생 마음고생을 한 숙영씨는, 남편의 외도 상대를 눈으로 확인한 것만 5번이라고 했어요. 여자로서 처참히 짓밟힌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4남매를 교육했대요. 자식들은 엄마 말에 순종하면서 잘 자랐고, 결혼해서 부모님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었어요. 남편이 5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숙영씨는 드디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었어요. 그런데 본인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섭섭해서 더 괴롭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딸들이 질투가 나서 미울 때도 많다고 했어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 하셔서,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먼저,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시라고 했어요.

아버지는 형체를 크게 그렸지만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 도깨비 같은 모습이었어요. 유독 큰 주먹이 눈에 뛰었죠. 엄마와 오빠들은 작게 그렸지만, 아버지보다는 구체적인 사람의 형상이었어요. 그런데 집 울타리 밖에, 제일 작고 형체가 흐물흐물한 여자 아이를 하나 그렸는데, 눈에서 흐르는 눈물만 또렷하게 그려 넣은 거예요.

“이 소녀는 누구예요?”

“나예요”숙영씨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세요”

“싫어요! 늘 술 먹고 엄마와 우리들을 때리고 욕했어요. 저는 학교에도 못 가게 했어요! 딸은 쓸모없다고 사람 취급도 안 했어요. 저를 한 번 안아 준 적도 없어요….”(울음)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세요”

“엄마, 엄마라도 나를 사랑해줬어야지… 엄마도 늘 오빠들이 먼저였어. 나는 단 한 번도 사랑도 존중도 받지 못했어. 나를 좀 가르쳤더라면 내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숙영씨 가슴 속에 70년 동안 울고 있는 어린아이는, 30분 넘게 통곡을 했어요. 저는 숙영씨를 안고 같이 울었죠.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도 네 아버지가 무서워서 너를 교육시키지 못했다. 미안하다… 잘 살라고 시집도 일찍 보냈는데… 미안해, 미안해….”

숙영씨가 자식들이 아무리 효도를 해도, 늘 섭섭함을 느끼는 건,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상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어머니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서운함…. 결혼 후에 남편으로부터 그 상한 감정들을 모두 보상받고 싶었는데, 아버지와 똑 같은 남자를 만나서 상처는 더 깊어진 거죠. 아버지, 어머니,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존중, 배려 이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요구하게 되었고, 내 맘에 차지 않을 때는 극단적인 섭섭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거예요. 현재의 가족 관계를 망치고 있는 ‘상처의 뿌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요. (다음 주에 계속)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문화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와 ㈜더공감 커뮤니케이션의 대표다.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으며,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문화치유학교>를 연다. 저서로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이 있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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