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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스토리’ 김해숙 “연기 욕심? 그런 단어조차 죄송하죠”

배우 김해숙에게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지울 수 없는 아픔 같은 작품이다. 우리나라 아픈 역사를 재현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극 중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은 터라 그는 촬영에 들어갔을 때부터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배우로서 연기 욕심이요? 이번 영화에선 그런 단어조차 죄송하죠. ‘배정길’이란 분의 삶은 그야말로 가슴 아픈 이 나라 역사 아니겠어요? 그래서 ‘여배우 김해숙’으로서 어떤 목적을 갖는 것 자체가 교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절 내려놓고, 그 분의 심정 0.001%만이라도 관객에게 전달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어요.”

영화 <허스토리>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이 1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018.06.14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김해숙은 최근 진행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허스토리>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영화 <허스토리>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이 1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018.06.14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런 연기, 안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는 인터뷰 시작 전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캐릭터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새였다.

“이런 연기를 안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파요. 촬영하면서 그 피해자 한 분 한 분 아픔을 제가 대신한거라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그런 엄청난 상처가 있다는 걸 진정성 있게 보여줘야 한다는 게 가장 괴로웠죠.”

이 작품으로 연기력 평가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마디였다.

“지금 28분 살아계셔요. 그 분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제겐 정말 큰 고민이고요.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느끼지만, 영화를 본 그 분들이 ‘그 때 내 심정과 비슷했네’란 말만 들어도 제가 노력한 것에 대한 옳은 평가일 것 같아요. 감히 사명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심정을,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관객들이 서로 나눠가길 바랍니다.”

그는 그동안 필모그래피와 다른 마음으로 연기했다고도 강조했다.

“그저 진심을 다하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죠. 명장면을 만드는 목적이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연기하게 해달라고 매 촬영 기도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촬영하면 할수록 홀가분하다기 보다는 깊은 늪에 빠지더라고요. 이런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영화 <허스토리>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이 1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018.06.14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여배우들만 모인 현장? 배우로선 행복했어요”

영화 속 주요소재인 ‘관부재판’에 대해선 그도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 알았다며 반성했다.

“민규동 감독에게 전화해서 ‘이게 실화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민 감독이 역사적 사실인데 너무나도 간략하게 적힌 터라 오랫동안 취재하고 발굴해서 준비한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열정이 느껴져 출연을 결정했죠. 또 위안부 피해에 대해 그동안 뉴스나 여러 콘텐츠로 많이 봐왔지만 정작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관심갖질 않았다는 생각에 부끄럽더라고요. ‘관부재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는 작은 소망 때문에 참여했습니다.”

이 영화엔 김해숙 뿐만 아니라 김희애,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등 베테랑 여배우들이 영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이유영, 한지민 등 젊은 배우들도 특별출연을 자청, 의미를 더했다.

“이 영화는 소재와 메시지가 묵직하지만, 닥친 문제를 여자들끼리 연대해서 법정에서 싸운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커요.”

특히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들과 연기 합을 맞춘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아마 그들도 제 마음과 똑같을 거로 생각해요. 촬영 현장이 재밌다기 보다는, 다들 기도하고 숙제하는 엄숙한 마음으로 임했으니까요. 다만 연기 열정 하나만큼은 엄청난 배우들과 함께한 거라 배우로선 좋았어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여배우끼리 같이 만들어가는 현장이 굉장히 행복했죠.”

영화 <허스토리>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이 1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018.06.14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박쥐>로 배우답다는 것, 처음 실감했어요”

연기 경력 44년인 그에게 배우로서 살아온 지난날 중 꼽을 만한 순간을 물었다.

“<박쥐>는 연기에 대한 아무런 확신이 없던 상태에서 ‘아, 내가 배우 맞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제가 미처 몰랐던 면을 좋은 감독을 만나 꺼낼 수 있었죠. 또 <도둑들>은 나아가서 ‘내가 여배우구나’라고 느끼게 한 작품이에요.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보람을 느꼈던 두 번의 순간이었죠.”

오랫동안 묵묵히 배우의 길을 달려온 그는 언제나처럼 겸손했다. ‘겸손’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도 귀띔했따.

“아직까지 연기를 사랑하고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새로운 배역을 만나면 지금도 설레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현장에서 건강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일을 나이 들어서도 끝까지 하고 싶다는 그 열정이, 지금 저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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