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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세상은 아름다운 놀이터라는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스물네 번째 책은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류시형·박진주·오상용·이동진·윤승철 지음 / 김희진 그림 / 길벗)이다.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작정 시작해 보는 거지.”

영화 <마션>에 등장했던 대사다. 화성에 혼자 고립된 식물학자는 ‘무작정’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텨 그는 결국 지구로 생환한다. 저 대사를 놓고, 나는 인생에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마다 떠올릴 만한 명문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섯 여행가들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뜨겁게 청춘을 생존한 여행 에세이다. 그들은 지구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좌절, 아픔, 그리움, 한계 그리고 결국 희망을 느낀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사막, 아마존, 유럽, 남극, 무인도 등등으로 상상의 시선을 보내야 했다.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라는 문장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토머스 핀천의 소설 <중력의 무지개>의 첫 문장이다. 나는 그들을 중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온 지구를 돌아다닌 후 저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이제 중력밖에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저들을 우주로 날려 보내주고 싶었다.

여행가는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윤승철 작가는 ‘간절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무인도에 가는 이유라고 말한다. ‘자발적 고립’을 통해 그는 잠시나마 그곳의 유일한 인간으로서 오롯이 자신만을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고독한 형태의 그 여행을 통해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쉽게 알 만하다. 스스로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을 것이다. 화성이든 무인도든 도시의 한복판이든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길 말이다.

내 청춘의 아프리카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긴 고립 속에 있었다. 소위 깨달음이라는 것은 고립의 과정 속에서 얻게 되진 않는다. 보통은 고립이 해소되는 극적인 지점이나 어떤 해프닝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손에 들려진다.

내 인생의 가장 ‘간절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풋’ 하고, 나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짐 캐리가 등장하는 영화와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아주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관객의 시점에선 매우매우 코믹한 상황이었다.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숙소에서 잠깐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베란다의 무거운 유리문이 가볍게 ‘드르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뜨자 정말이지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 고릴라만한 덩치의 개코원숭이가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오만가지 영상처럼 만들어져 내 머리에 스크린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 오만가지 중에서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만을 번개처럼 잡아냈다. ‘내가 있는 이 숙소는 제일 끝 방이다’ ‘게다가 이 시간 이 건물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가 직접 해결해야만 한다’….

당시 내가 머릿속에서 잡아낸 3가지 생각이다. 그러자 나는 지체 없이 행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깜짝 놀랄 만큼 나로부터 엄청난 소리와 저항의 에너지가 솟구쳤다. 동물적인 소리와 액션이었다.

나의 에너지가 전달된 것인지, 원숭이 눈에조차 내가 너무 이상해 보여서인지, 그저 불쌍해서 봐준 건지 지금껏 알 수 없다. 영원히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개코원숭이는 몸을 돌려 조용히 정글로 돌아갔다. 당시엔 크게 놀랐지만, 세월이 갈수록 웃겨지는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나는 그 해프닝이 내 인생 전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 있게 됐을 때는 외로울수록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내 자신을 보았다. 아프리카의 자연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밤의 바닷가를 걷다가 정말 경이로운 장면을 보기도 했다. 시선을 올리면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고, 이어 시선을 내리면 하얀 해파리 떼들이 발광하며 하늘과의 경계가 완전히 없어진 검은 바다를 온통 채우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환상에 구분이 없어지는 아주 기이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기억들이다. 낯선 곳에 자신을 옮겨다 놓으면 스스로의 모습은 더 잘 보인다. 또 낯선 곳에서만 보이는 자신의 모습도 있다. 아프리카 시절 나는 내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 인생을 사는 것도 여행이라면 나의 지난 발자국들은 이 세상 어디에 남겨졌을까? 어떤 간절함으로 살아야 이 세상에 의미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것일까? 여행이란 떠올리기만 해도 이토록 상념에 빠져들고 만다.

‘우주의 무인도-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53x45㎝ Oil On Canvas 2018

오늘도 나는 물감 묻은 붓을 노 저으며 캔버스라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 ‘우주의 무인도’를 가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극한 고립’의 결정판이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의 잠재돼 있던 지혜와 용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다.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은 ‘천국의 고독’을 느꼈던 잔지바르 섬의 풍경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절경과 맛난 음식이 있어도 홀로 섬에 계속 고립돼 있다면, 자발적 고립이 아닌 다음에야 천국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같이 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 따위는 없다. 지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만의 행복한 발자국을 충분히 남기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은 우리를 이 세상을 여행하라고 보냈을 것이다. 천상병의 귀천(歸天)이 떠오른다. 시인은 살아서 알았던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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