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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그라운드, 기록적 폭염과 싸우는 프로스포츠

전국이 20여 년 만에 찾아온 불볕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할 만큼 살인적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펄펄 끊는 가마솥 같은 열기 속에 야외에서 열리는 인기 프로 스포츠에는 비상이 걸렸다. 폭염은 야구장 풍경도 바꿨다. 선수들의 훈련 시간이 한낮의 열기를 피해 최소 30분 이상 늦춰졌다. 감독들은 자율 훈련, 또는 실내 훈련으로 대체하면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프로야구 선수들이 암묵적 합의 사항으로 지켜왔던 훈련 시 반바지 착용 금지 규정도 현장의 요청에 따라 사라졌다. 또 주로 낮에 열리던 퓨처스리그는 지난 18일 경산 삼성-KIA전이 이틀 연속 취소되는 등 폭염으로 인한 취소, 중단 경기가 예년보다 늘었다.

더그아웃에 냉수건과 얼음 주머니, 얼음통은 기본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코끼리 에어컨’으로 불리는 강력 냉방장치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거의 전 구장에 배치됐다. ‘코끼리 에어컨’ 앞은 열기를 식히려는 선수들로 북적거린다. SK는 냉방 시설이 열악한 원정 구장을 방문할 때 ‘코끼리 에어컨’을 갖고 이동하기 위해 트럭을 빌릴 정도다.

LG트윈스 제공

프로축구에서도 폭염 탓에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 KEB하나은행 프로축구 K리그1 2018 19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FC서울전에서 경기 도중 심판이 선수들에게 ‘쿨링 브레이크’를 줬다.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킨 뒤 선수들에게 수분 공급을 위한 약 2~3분의 휴식 시간을 주는 것으로 이 역시 기록적 폭염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무더위 때문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물을 마시도록 휴식을 주면서 첫 선을 보인 ‘쿨링 브레이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가 공식 도입한 뒤 지난 14일 K리그에서도 처음 등장했다.

지난 22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MY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에서는 보통 3개 홀마다 배치했던 얼음물을 홀수 홀마다 제공했다. 강한 햇볕에 노출된 그린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협회는 급수차를 동원해 오전 조가 마친 뒤 물을 뿌려 대회 코스 유지에 노력했다.

혹서기를 잘 넘기는 비결은 따로 없다.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잘 먹고 잘 쉬면 된다. 복사열까지 더해져 극한의 온도까지 오르는 그라운드 위에서 무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치열하다.

롯데자이언츠 제공

‘대프리카’로 불릴 만큼 혹서기 무더위가 유명한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은 라이온즈파크 준공 당시 설치한 ‘미스트 노즐’ 덕을 보고 있다. 체감 온도 40도가 넘는 열기 속에 경기했던 선수들을 배려해 만든 ‘미스트 노즐’은 이제 관중석까지 추가 설치해 경기 도중 시원한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SK는 2년 전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 유지를 위해 ‘냉탕’을 샤워실에 마련했다. 체 내 심부열이 상승하면 신진대사도 떨어져 경기력에도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선수들이 연습이 끝난 뒤 이용하도록 했다.

선수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트레이너팀과 영양사들의 노력도 각별하다. 무더위 속 입맛이 떨어진 선수들이 수분이나 음식 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경기력에도 영향을 준다. 특별히 혹서기에는 수분과 탄수화물 섭취가 중요하다. 한화는 홈 경기 때 선수들에게 혈류 순환, 지구력에 도움을 주는 비트주스를 먹도록 권하고 있다. SK는 지난 17일 초복에 선수단 메뉴에 장어를 준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쓰는 방식으로 독특한 향의 암모니아 앰플을 이용해 더위 속 탈수로 선수들의 떨어진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박민지가 지난 주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MY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에서얼음 주머니를 머리에 얹고 코스를 체크하고 있다. KLPGA제공

대부분의 구단은 과일 화채, 미숫가루, 홍삼, 비타민 등을 다양하게 준비해 선수들이 경기 중에도 수시로 섭취하도록 돕는다.

KBO는 리그 차원에서 폭염 대책을 연구 중이다. 다만 빠른 도입이 어려워 2019시즌에 맞춰 준비할 계획이다. 정금조 KBO 사무차장보는 “폭염 속 매일 야구하는 선수들과 관중의 안전을 위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혹서기에는 탄력적인 경기 시간 조정 등을 새 시즌 일정을 짤 때 고려하겠다. 당장은 응급 처치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천FC와 광주FC 선수들이 지난 21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2 경기에서 심판이 쿨링 브레이크를 선언하자 물을 섭취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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