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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올림픽까지? 한국e스포츠 ‘들러리’ 안되려면…

8월 18일 개막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e스포츠계에 큰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시범종목이기는 하지만 아시안게임의 정식 대회로 치러지면서, e스포츠계가 추구해 온 ‘정통 스포츠화’라는 목표에 성큼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e스포츠는 대중의 인식 개선과 함께 최종 목표인 올림픽 종목화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호재 속에 ‘종주국’을 자처해 온 한국 e스포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여러 부침을 겪으며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국 e스포츠가 글로벌 시장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올림픽까지?

지난 20~21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포럼에서는 e스포츠와 관련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IOC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가 e스포츠 조직과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 등이 참석한 이번 IOC e스포츠 포럼에서는 라이엇 게임즈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일렉트로닉 스포츠 리그(ESL)의 최고 경영자와 에코 폭스의 게임단주 릭 폭스, 트위치의 e스포츠 프로그램 최고 책임자 등 e스포츠를 구성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가해 올림픽 조직과의 협업을 논의했다.

e스포츠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팬들의 열기에서는 이미 전통 스포츠들을 압도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바클레이스센터에서 열린 ‘오버워치 리그’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한 런던 스핏파이어 선수들이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블리자드

IOC의 스포츠 디렉터 키트 맥코넬은 “미래의 협력은 올림픽 가치를 지지하고 증진하는 것에 근거하는 합의점이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참여할 계획이다”라고 포럼 결과에 힘을 실어줬다.

또 IOC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024년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시가 흥행을 위해 파리올림픽에 e스포츠를 시범 종목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e스포츠의 올림픽 진출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포럼에 참석한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총장대행은 “전통스포츠와 e스포츠간 협력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e스포츠에 대한 IOC의 관심과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올림픽 입성과 관련해 IOC가 이와 관련한 협의단을 꾸리고 세부 검토를 거친 뒤 10월께 중간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왜?

게임이 스포츠인가’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 시장은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팬들의 열기에서는 이미 전통 스포츠들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에픽게임스가 개발한 <포트나이트>의 글로벌 대회인 ‘2019 포트나이트 월드컵’은 총상금 1억 달러(약 1135억원)를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이는 US오픈의 총상금(5300만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또 밸브의 <도타2>의 세계대회인 ‘디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총상금으로 2470만 달러(약 279억원)을 내걸었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 등 인기 종목은 이미 수십억원대의 상금이 걸린 대회를 안정적으로 치르고 있다. 특히 이들 대회는 티켓 수입만 수십억원대에 이를 정도로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게다가 주요 게임들의 e스포츠 대회는 주요 종목의 프로리그 못지않은 체계와 규모를 갖추고 운영되고 있다. 시스템 역시 풀뿌리 리그에서 세미 프로 및 프로리그를 거쳐 글로벌 대회까지 생태계를 갖춰 나가고 있으며, 29일(한국시간) 뉴욕에서 첫 시즌 챔피언 결정전을 마친 <오버워치>의 경우 e스포츠 최초로 뉴욕과 LA, 런던, 서울 상하이 등을 세계 주요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연고제를 도입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던 ‘2017 롤드컵’ 결승전 장면. e스포츠는 이미 팬들의 열기와 규모 면에서 IOC가 주목하는 협력대상으로 떠올랐다. |라이엇게임즈

시장조사기관 ‘뉴주’에 따르면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며 올해 9억 600만 달러(약 1조 2800억원)에 달하며,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액티베이트’는 2020년까지 전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리그운영 수입)가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로 성장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37억달러(약 4조1400억원)와 NBA의 48억달러(약 5조3700억원)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기도 했다.

e스포츠계 한 관계자는 “올림픽의 흥행을 지속적으로 담보해야 하는 IOC 입장에서 젊은층에게 이미 스포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e스포츠를 더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종주국’ 한국은 ‘들러리’ 전락 우려

올림픽 입성까지 노리는 e스포츠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은 한국이다. 1990년대말, 우후죽순처럼 치러지던 PC방 대회에 미디어를 연결해 관전 스포츠로서의 틀을 만든 것도 한국이고, 이를 시작으로 게임 중계 전문 방송사들이 설립되고 대회가 열리면서 신종 직업인 ‘프로게이머’가 등장했다. 결국 이는 각종 대회와 정규 리그로 이어져 미디어와 자본이 결합한 구조로 완성됐다.

이를 통해 탄생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국 게이머들은 지난 20여년간 전세계 주요 대회를 휩쓸었으며, 한국e스포츠계는 ‘국제e스포츠연맹’(IeSF) 창립을 주도하며 글로벌 현장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최근 e스포츠 환경이 종목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와중에 협회 내부의 문제까지 불거지며 한국e스포츠계는 상황 대응력을 급격히 잃고 있다. 아시안게임 참가도 대한체육회 가입문제로 출전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팬들과 일부 정치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해결했을 정도였다.

올림픽 입성까지 논의되는 상황에서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e스포츠계에 대한 재정비 요구가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e스포츠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종주국을 자처하던 한국e스포츠가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들러리로 전락할 상황에 처했다”며 “IOC 등 글로벌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비전과 실무를 주도할 조직에 대한 재정비와 지원을 통한 제2의 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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