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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한국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분노증후군 ‘화병’

마음의 상처를 묵혀두어서 생기는 병, 한국인이 유독 많이 앓는 ‘화병’을 아시나요?

의학 사전을 찾아보면 ‘명치에 뭔가 걸린 느낌 등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의 일종으로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기 때문에 발생한 정신 질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해소하지 못해서 폭발하는 병’이지요. 미국 정신과의사협회에서는 ‘한국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분노증후군’으로 ‘화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병명도 우리말 발음을 그대로 옮겨서‘Hwa-byung’이라 표기했습니다.

유독 한국인에게서 이 증상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기 때문에 겪는 정신 질환이고, 실제로 화병을 오래 앓은 사람들은 몸이 아픕니다.

우리 엄마는 20년 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성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두통약을 하루 2개 이상 먹어도 먹는 순간에만 잠시 효과가 있을 뿐이었어요. 밤에 두통이 찾아오면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자지 못했어요. 대형 병원을 전전하며 MRI를 수차례 찍었지만, 엄마의 뇌는 멀쩡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더 깊은 우울에 빠졌습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니 고칠 수도 없겠다는 좌절감 때문이었어요.

저는 엄마의 병명을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과 투병 그리고 죽음을 거치면서 생긴 ‘화병’이 20년 넘게 앓아온 엄마의 고질병이라는 걸요.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나서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자신의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엄마에게 수차례 상담을 권해보았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었어요. ‘내 마음을 남에게 말하기 싫다’는 거였죠.

엄마의 가슴에 둥지를 틀고, 육체의 통증으로 불쑥 불쑥 나타나는 ‘화병’을 치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나의 고통을 글로 써보고, 내 마음과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끈질긴 설득으로 ‘내 인생의 자서전’ 쓰기를 시작 하면서 엄마의 악성 두통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내면 상처를 글로 풀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변화였지요. 말로 풀수 없는 마음의 고통은 글로 풀 때 더 잘 풀린다는 걸 본인도 느끼기 시작한 거였어요.

제가 KBS1 <아침마당>에 두 번, <여유만만>에 나가서 내 마음을 글로 써보는 것이 내면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강연하면서 ‘엄마의 자서전 쓰기’를 예로 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의 치유 과정을 소개하고, 자연스레 엄마 자랑을 했죠.

엄마는 첫 방송이 나간 후에 매우 두려워했어요. 핵심은 상처의 치유 과정인데, 자신이 숨겨온 내면의 상처,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갑자기 두려워졌던 거예요. 하지만, 방송을 본 엄마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숙아! 니가 그런 고통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 힘든 시절을 말도 안 하고 잘 살아 냈네! 나도 니처럼 어린 시절 상처가 많은데, 니도 같은 상처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까 너무 위로가 된다. 나도 니처럼 글을 써봐야겠다. 숙아! 고맙다!”

다시 우울에 빠질 뻔했던 엄마는 웃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엄마가 제게 말했어요.

“내가 있잖아. 요즘 머리가 안 아프다. 수면제도 안 먹은 지 꽤 오래다. 신기하재?”

화병이 낫고 있는 거였습니다. 화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어떤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아요. 풀고, 비우고…. 응어리 진 고통을 풀어내야만 낫습니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이제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지요. 이젠 과거에 나에게 상처 주었던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것들과 화해하는 연습인 글쓰기부터 시작해보세요. 내 마음과 대화하는 것, 바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마음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의 대표다. 현재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다.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영화치유학교>,<문학치유학교>를 연다. 직장인과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감정조율과 소통, 공감 대화법 강의를 한다. 마음의 상처와 대화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는 책 <마음아, 넌 누구니>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을 썼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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