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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인 씨네리뷰] ‘풀잎들’ 결국 ‘홍상수’에 젖어버리네

■편파적인 한줄평 : 천재를 이길 순 없소.

이쯤되면 굴복이다. 온갖 잡음이 있어도 천재의 작품은, 결국 사심 버리고 작품으로만 대할 수밖에 없다. 감독의 사상이 투영된 게 영화 자체라고 해도 그 작품엔 고유의 생명이 있는 만큼, 완벽한 작품성을 갖췄다면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게 된다. 영화 <풀잎들>(감독 홍상수)처럼 말이다.

영화 ‘풀잎들’ 속 장면.

<풀잎들>은 남녀관계를 안고 있는 다양한 군상이 저마다 기함할 상황에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극을 다룬다. 흑백 필름 안에 인물들을 각진 앵글로 담아내면서도 ‘엣지’를 놓지 않는 홍상수 감독만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미덕을 꼽자면 단연코 이름 석자, ‘홍상수’다. 극적인 얘기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별 것 아닌 얘기를 극적으로 재밌게 만들어내는 건 ‘대가’만이 할 수 있을 터.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풀잎들>에선 그만의 고유 공식인 ‘파편 맞춰 퍼즐 완성’이 되풀이되지만, 그 힘은 전작들보다 두 배 이상이다. 무엇보다도 ‘불륜’으로 점철된 최근작 이슈에서 벗어나 사랑, 죽음, 욕심 등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화법이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가 인생을 직시하며 나직이 읊조리는 얘기에 관객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쓴맛을 보고 ‘해도 안되는’ 걸 경험해본 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홍상수 감독 만의 솔직한 화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상미 역시 일품이다. 일상적인 배경과 평범한 앵글이라도 창의적인 편집으로 신선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또한 웅장한 BGM마저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단지 배경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활용돼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의 ‘뮤즈’ 김민희도 여봐란 듯 제 몫을 해낸다. 혹시나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고 도도하게 톱배우 길을 갔다면 맡았을까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웃음 주는 관찰자형 화자’ 역을 얄밉도록 차지게 소화해낸다. 보는 이가 그가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이슈를 잊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건, 촌철살인 대사에 그만의 안정된 연기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기주봉, 서영화, 정진영, 김새벽, 이유영, 안재홍 등 홍상수 사단으로 불리는 연기파 배우들도 저마다 위치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공민정, 한재이, 신석호 등 새로운 피들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처럼 <풀잎들>은 완벽한 연출, 연기가 어우러져 66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땐 홍 감독의 천재성이 얄미울 정도다. 오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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