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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고민사전]당신의 배려에 상대는 불편할 수도 있어요

몇 달 전, 교통사고가 났었다. 차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서비스센터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담당 직원은 내게 친절하게 말했다.

“사모님, 수리한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남편 분은 같이 안 오셨나요?”

“저한테 견적서 주시고 설명해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마흔이 넘은 여자는 무조건 남편이 있어야 하나요? 그리고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꼭 남편과 같이 와서 들어야 하나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리님, 나이든 여자가 모두 사모님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냥 저를 ‘손님’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운전 15년차예요. 설명해주시면 잘 알아들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순간, 두통이 밀려왔다. ‘나이든 여자는 무조건 사모님이라고 부를 것’과 같은, 회사의 고객 호칭 사용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일까. 국어사전에 명시된 사모님은 ‘스승의 부인’ ‘남의 부인’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높여 부르려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모든 나이든 여자는 누군가의 부인일 것’이라는 편견이 전제된 표현이므로, 듣는 이가 불편할 수도 있다. 사고가 크게 났으니, 남편이 동행했으리라 짐작하고 ‘남편의 동행’에 대해 질문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그분의 편견이 아닌가. 어쨌든 그의 ‘배려’의 방식이 나는 꽤 불편했다.

며칠 전, 핸드폰 매장에 갔을 때의 일. 20대 초중반 청년들이 열심히 제품을 소개해주었다.

“어머님, 이 제품이 오늘 행사 제품이라 할인이 가장 많이 됩니다!”

청년은 모든 문장의 주어에 ‘어머님’을 붙였다. 가끔 들을 때마다 역시나 불편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아이를 낳았다면 청년과 같은 아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나이라고 해서, 당신이 내게 ‘어머님’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지 않는가? 나는 웃으면서 부탁해보았다.

“저를 그냥 ‘손님’이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청년은 ‘이 사람 되게 까칠하네’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3초간 바라보다가 ‘고객님’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아버님’ ‘어머님’과 같은 친족어를 확장하여 다양한 대상을 부르는 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사람도 있지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나이든 여자라고 해서 모두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결혼을 했더라도 선택에 의해 낳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낳고 싶었으나 못 낳았을 수도 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나이든 남자와 여자는 모두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는 편견이 내포된 이 단어가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혼인 내 남자 친구도 방문한 매장에서 ‘아버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모든 나이든 남자와 여자가 누군가의 배우자거나 부모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고 호칭을 선택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

마땅한 호칭이 없을 때는 ‘손’의 높임말인 ‘손님’이라고 부르자. ‘고객님’이라는 표현도 문법상 맞지 않다. ‘고객’은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라는 높임의 의미가 있으므로, 또 ‘-님’을 붙일 필요가 없다. ‘손님’보다 상대를 좀 더 높여주는 느낌을 주고 싶다면,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선생(先生)은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뛰다가 카드를 흘렸다. 내 또래의 남자가 카드를 주워주며 말했다. “아줌마, 이거요!” 그는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불쾌한 마음을 참으며 독백했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아주머니’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나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이므로, 나이든 모든 여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너무 까칠하고, 더 이상 ‘아가씨’라 불리지 못하는 히스테리 때문에 괜히 기분 나빠하는 것이란다. 과연 그런가? 누군가의 배우자 또는 부모가 아닌, 그 사람 자체로 불러주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마음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의 대표다. 현재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다.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영화치유학교>,<문학치유학교>를 연다. 직장인과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감정조율과 소통, 공감 대화법 강의를 한다. 마음의 상처와 대화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는 책 <마음아, 넌 누구니>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을 썼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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