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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마세크 ‘예언자 리뷰즈’

미술관에 걸려있을 정도의 그림이라면 웅장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림은 그런 기대와 다르죠. 크기도 있는 데다 어둡게 처리된 배경 색에 뭔가 신비하면서도 섬뜻한 눈빛의 주인공을 마주하는 순간은 꽤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의 강렬한 주인공은 체코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여성 예언자, 그리고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여왕이었던 리뷰즈는 700~738년 체코 프라하에서 왕국을 세워 통치를 했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자칫하면 조각조각 분열될 뻔했던 이 지역에 처음으로 통일되고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죠. 그 때문에 체코의 예전 이름인 보헤미아 왕국은 리뷰즈부터 시작합니다.

“화가 마세크는 보헤미아 문화와 프라하를 세운 전설적인 예언자를 표현하기 위해 아마도 그가 파리에 머물면서 살펴봤던 엄숙한 마리안느나 영웅적으로 묘사된 성녀 주느비에브를 참고했을 것이다. 화가는 그의 백성과 마법의 영역이었던 신들 사이를 중재하던 여왕 리뷰즈의 아우라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세크 ‘예언자 리뷰즈’(1893년. 193×193㎝)

마리안느는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의 상징이자, 여성화되어 표현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의 관공서나 주요한 시설마다, 그리고 틈틈이 나타나는 역사화에서도 이 마리안느는 주인공으로 존재감이 확실하죠. 그리고 성녀 주느비에브는 고대 파리가 훈족의 침략에 함락되기 직전 파리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지도력으로 마침내 외적을 막아낸 영웅입니다. 이 두 여성 캐릭터는 프랑스와 파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역사라는 장르가 근대로 들어와 국민 국가가 생기고 국민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중요하게 대접받기 시작하면서 민족 고유의 전설과 특성들이 같이 조명됩니다. 프랑스와 러시아 등 유럽에서 힘을 보여주면서 자리잡은 나라들은 다 방법이 비슷했습니다. 후발 주자 격인 동유럽의 국가들에게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사례는 따라야 할 모범이었겠지요. 마세크가 보헤미안 민족의 첫 번째 왕, 그것도 예언자를 내세운 것은 이런 흐름에서 나왔고, 프랑스 전역에 설치된 마리안느와 주느비에브의 이미지를 참고했을 것이라는 오르세의 지적도 그 때문에 나왔습니다.

“야생 상태의 볼타바 강가에서 리뷰즈는 달 형태가 이어서 새겨진 긴 튜닉을 입고 신전 앞에서 신탁을 받는 것 같은 모습이다. 여러 개의 무거운 줄과 암소 문양으로 장식된 액세서리는 이집트의 여신 하토르의 여사제들과 골루와족의 드루이드들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리뷰즈는 슬라브 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참나무를 들고 있다.”

민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남은 근거가 별로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이미지들은 이미 알고 있는 기억이 사용됩니다. 근엄하고 무게있는 얼굴과 자세는 마리안느와 주느비에브를 차용하고, 정형화된 자세가 비슷한 직업이었던 이집트의 여사제들과 드루이드인 것은 유난히 역사와 전설 시대에 관심이 많았던 19세기 후반의 문화 환경이기도 하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가 집중되고, 프랑스 역시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연구에 집중 투자했으며, 문학과 음악 장르의 예술이 주목하는 부분도 비슷했습니다)마세크가 공부했던 파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이 공부했었던 체코의 동료 화가 알폰스 무하도 마찬가지였겠죠.

“마세크는 또 비잔틴 예술에서 머리 장식의 화려함은 물론 자세의 엄숙함도 가지고 왔다. 비잔틴 양식의 기반인 모자이크 기법 역시 비슷하게 사용되었다. 몽환적인 푸른 색 속에 엄숙한 시선의 리뷰즈는 이 초상화가 음산하고 불안하며 복수의 기운이 느껴지도록 한다.”

마세크가 이 그림을 그리던 때 그의 조국 체코의 전신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에 침략당하고 고초를 겪고 있었습니다. 보헤미안 민족의 이야기가 슬라브 계통의 러시아에 가깝고, 그 슬라브가 정신의 뿌리로 가지고 있던 비잔틴 문화 역시 찾아보는 마세크의 노력은 이해도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처음엔 깜짝 놀랄 것 같았던 그림이 분석을 하고 이야기를 찾아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조합으로 이뤄진 것 같고 이젠 다 됐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요?

이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비슷한 조합과 환경으로 나온 다른 그림들이 보여준 느낌과 사뭇 다른 압박감과 집중이 전해지는 것은 마세크 개인의 능력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들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저마다 다른 무게가 있습니다. 마세크에게 전해진 절실함과 이겨내고 싶은 투지가 만들어내는 그 긴장감이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 그 사실 자체는 마리안느와 주느비에브, 드루이드와 비잔틴이 섞여 만들어 낸 조합 이상의 솔직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매번 비슷한 그림들을 보면서도 가끔 인상깊은 시간을 만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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