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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 염경엽 감독의 ‘운명’

2012년 10월10일 아침이었다. 히어로즈는 김시진 전임 감독의 후임으로 염경엽 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사실을 깜짝 발표했다.

염 감독은 인터뷰에서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천운이 있어야 맡을 수 있다는데 기회를 주신 구단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모두가 놀란 인사였다.

당시 염 감독은 프로야구 감독직을 꿈꾸지는 않았다. 코치 시절의 막연한 바람이었을지 모르지만, 훗날 야구단 고위직에 오른다면 감독보다는 단장이 가까울 것으로 여겼다. 염 감독은 코치 경력을 쌓기 이전, 현대와 LG 구단에서 일하며 프런트로 먼저 부각된 인물이었다.

염 감독이 정작 단장이 된 것은 히어로즈 감독으로 4시즌을 보낸 뒤인 2017년이었다. 스스로 지휘봉을 놓고 숨고르기를 한 뒤 SK 단장 제의를 받아들였다.

염경엽 SK 감독과 최창원 구단주. 이석우 기자

그러나 대중의 시야에 ‘야구인 염경엽’은 감독 이미지에 이미 가까워져 있었다. 몇몇 구단 감독직에 틈이 보이면 후보군에 단골로 등장했다. 지난 2년간 SK를 지휘한 트레이 힐만 감독 후임으로 염 감독이 바통을 받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나돈지 오래이기도 했다. 염 감독의 ‘이력서’에는 히어로즈를 4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며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과정이 담겨있다. 이는 염 감독의 자랑스런 ‘스펙’이자 배경이다. 염 감독 본인은 그 중 2014년 삼성에 불과 반게임 차 뒤진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친 뒤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친 것을 두고두고 아파했다.

염 감독은 그렇게 기약 없이 기다렸을지 모를 때를 참 묘한 상황에서 만났다. 힐만 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며 그 앞에 감독 자리가 다시 찾아왔다.

한편으로 고약한 운명이다. 3년 25억원의 최고 대우. 2년 총 8억원에 히어로즈 감독을 첫 맡았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영광이 따르지만, 상상 이상의 부담도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KBO리그 최초로 디펜딩 챔피언 팀의 새 감독이 됐다.

SK는 페넌트레이스에서 두산에 무려 14.5게임 차 뒤진 2위였지만,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야구 역사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먼저 기억한다.

준우승 팀 감독이 바뀐 적은 몇 차례 있었다. 2002년 김성근 LG 감독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 경질됐고, 2010년 선동열 삼성 감독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 해임됐다. 2013년에는 김진욱 두산 감독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 팀을 떠나야 했다.

이 중 선동열 감독 후임인 류중일 감독만이 2011년 우승을 발판으로 롱런했고 김성근 감독 후임이던 2003년의 이광환 감독, 김진욱 감독 후임이던 2014년의 송일수 감독은 한 시즌만에 타의에 의해 지휘봉을 놓아야 했다. 두 감독 모두 앞선 시즌이 만든 ‘비교의 프레임’에 갇힌 채 벗어나지 못했다.

SK는 지금 우승 인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SK 관계자들 대부분이 행복에 젖어있을 때이지만, 염 감독만은 “그저 좋을 수만은 없다”고 무거운 책임감을 숨기지 않는다.

염 감독의 운명은 일면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처럼 처절하게 찾아왔다. ‘다다다다’ 울리는 천둥 소리로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곡의 도입부처럼 KBO리그에 전례 없는 상황의 감독직이 그 앞에 운명처럼 뚝 떨어졌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청각 상실 상태로 만들었다. 곡의 별칭은 운명이지만, 작곡가는 오히려 명작을 통해 운명을 극복했다.

염 감독은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니 피할 수 없이 싸워야 했는지 모른다. 염 감독은 3각 트레이드를 통해 김동엽을 내주고 히어로즈 시절 제자 고종욱을 영입하며 운명 극복의 첫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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