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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헌 기자의 형광펜] 기획과 연주, 녹음과 발매…꿈이 현실이 되는 가평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의 의미

지난 14일 저녁 실로 8년 여 만에 가평역사 부근이 환하게 밝혀지며 마을축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펼쳐졌다. 2010년 경춘선의 복선화 이후 선로가 바뀌어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던 예전 가평역이 새롭게 ‘음악역’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자리를 깔면 250석, 스탠딩이면 4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역사 중앙의 ‘뮤직 스테이션’ 공연장에는 밴드 잔나비를 보기 위한 젊은 팬들과 가평 인근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까지 나이와 성별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이들은 깜깜한 어둠이 내린 공연장 안에서 가수 백지영과 장필순, 국악인 강권순, 밴드 잔나비 등의 노래를 들으며 ‘음악역 1939’이 시작을 축하했다.

‘음악역 1939’의 ‘1939’는 가평역사가 처음 생긴 해를 기념해 만든 말이었다. 이미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등 여러 음악축제를 치러낸 가평군은 역사가 문을 닫은 후 사후처리에 애를 먹던 역사 부지에 2014년 경기도 창조오디션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문화단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총 4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조성사업은 또한 이후에도 연간 20억원씩의 예산이 추가로 투입된다. 이곳은 ‘뮤직 스테이션’과 ‘S 스테이션’으로 명명된 스튜디오, ‘T 스테이션’으로 명명된 연습실 그리고 ‘뮤즈빌’로 명명된 숙소 등 4개의 건물과 야외공연장, 레스토랑 그리고 지역 특산식품을 판매하는 매장 등으로 구성됐다. 전문 공연장 외에도 영화상영관이 없던 가평에 각각 80여석, 40여석 규모의 상영관도 생겨 가평군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최신 개봉영화도 볼 수 있게 됐다.

내년 1월1일 개관하는 가평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의 전경. 사진 가평군

최고 80명의 오케스트라가 들어가 녹음실로도 변신할 수 있는 공연장은 그 공연장의 소리를 세계적인 스튜디오 설계사 샘 도요시마가 설계한 시설로 채집해 인근 50m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수 있다. 공연장 외에도 대규모 악단의 안정적인 녹음실 역할도 병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녹음실 역시 밴드가 직접 합주를 통해 녹음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각각 보컬과 악기의 녹음이 가능한 녹음실 등이 따로 마련돼 서울의 최고급 시설도 부럽지 않은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한 스튜디오의 조정장치 ‘콘솔’ 역시 9억원 가량의 아날로그 장비(니브 88RS)로 우리나라에서도 5대 밖에 없을 정도로 귀한 기기를 들여놨다.

이곳을 운영하는 유명 베이시스트 출신 음악인 송홍섭 대표는 “K팝의 그 이후를 볼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음악관련 시설을 갖춰놓고 대여에 들어가면 클래식이나 재즈, 국악 등 전통적은 음악장르를 위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인디밴드나 다양한 K팝 아티스트들에게도 문호를 연다는 방침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조용필이나 김동률 같은 아티스트의 녹음을 원한다는 말도 나왔다.

내년 1월1일 개관하는 가평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의 스튜디오 전경. 사진 가평군

전국에는 많은 음악관련 시설이 있지만 이렇게 기획에서부터 연주, 녹음과 음반 취입까지 모든 작업이 하나의 장소에서 해결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숙소도 80인 오케스트라에 맞춰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구비해 직접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면서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포럼이나 세미나 등 음악과 관련된 각종행사를 하면서 페스티벌을 유치하고 또한 지역민들에게 스튜디오를 대여하면서 음악의 대중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구상이다.

K팝은 그동안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해외에서 올린 실질적인 많은 성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이제는 하위장르의 이미지를 벗고, 팬들 역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장르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왜 한국의 음악은 젊고 날쌘 가수들이 춤을 추는 음악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는가” “한국 대중가요에는 다른 장르는 없는가” 등이다.

내년 1월1일 개관하는 가평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의 지난 14일 오프닝 콘서트 가수 장필순의 공연 장면. 사진 가평군

물론 없지 않다. 조명을 받지 못하거나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없었을 뿐이다. 한국 K팝, 특히 아이돌 음악은 체계적인 훈련과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성장했다. 이러한 토대는 ‘연습생 제도’라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에 발전된 인프라가 한 몫을 했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음악역 1939’를 찾았을 때 한 쪽에서는 80인조 오케스트라가 한국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녹음하고 있고, 연습동에서는 한 인디밴드의 연습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밖에 나가면 다양한 장르의 버스킹을 군민과 대중이 즐기고 있고, 어린아이와 어르신들이 서로 기타를 둘러메고 연습실을 찾아가느라 바쁜 걸음을 하고 있다. 이들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서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의 작업을 응원한다.

이러한 그림이 아마 더 큰 폭의 모습으로 다가올 K팝의 ‘큰 그림’이 될 것이다. 가평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는 K팝 아이돌 음악에 투입됐던 투자가 나머지 장르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것이다. 이 마을이 북적댄다면 그만큼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힘 역시 약동할 것이다. 음악이 나라의 자랑이 되고 국민의 생활이 되는 행복한 상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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