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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 장기호 “전태관, 봄여름가을겨울 사운드의 중심”

밴드 ‘빛과소금’의 장기호는 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 전태관의 부고에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태관은 지난 27일 오후 11시50분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병원에서 딸과 봄여름가을겨울 단짝 김종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장기호는 28일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그저께 갔을 때는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며 “그날 신장투석을 중단했던 것 같다. 어제도 가려다가 제가 감기에 걸려 못 갔는데”라고 마음 아파했다.

장기호는 전태관이 1988년 김종진과 봄여름가을겨울로 출발하기 전이던 1986년, 고 김현식의 백밴드인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함께 활동했다. 밴드 멤버는 장기호(베이스),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고 유재하(건반)였다. 하지만 유재하가 솔로 음반을 위해 나가면서 박성식이 합류해 1986년 김현식 3집을 냈다. 그러나 김현식의 대마초 사건으로 밴드 활동이 중단되자 김종진과 전태관은 봄여름가을겨울로 음악적 독립을 했고, 장기호와 박성식도 1990년 빛과소금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봄여름가을겨울 고 전태관, 차일훈 인스타그램 캡처

장기호는 30년 넘은 기억을 또렷이 하고 있었다. “종진이가 저와 해군 홍보단 동기였어요. 그때 같이 이태원동 신중현 선배의 라이브 카페, 방배동 카페 등지에서 음악인들과 연주하며 교류했는데, 정원영 선배에게서 동생 친구이던 전태관을 소개받았죠. 또 전태관이 유재하와 초등학교 동창이어서 네명이 어울리게 됐다”

김현식은 당시 방배동 카페에서 장기호와 김종진 등이 연주하는 걸 보곤 했다. 그러면서 동부이촌동 같은 동네에 살던 장기호에게 “새롭고 참신한 밴드를 하고 싶다”며 밴드를 조직해보라고 했다.

장기호는 먼저 김종진이 떠올랐고, 전태관과 유재하도 합류했다. 당시 김종진과 전태관은 김수철 밴드 제안을 받고 잠시 활동할 때였다.

“태관이는 밴드 멤버들끼리 음악적으로 부딪힐 때도 피스 메이커 역할을 했죠. 선천적으로 성격이 둥글둥글했어요. 그래도 연주할 때는 승부 근성이 있었어요”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소금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퓨전 재즈를 도입해 밴드 사운드를 구현한 시작점으로 불린다.

장기호는 “당시 해외 재즈계에서 퀄리티 높은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왔다”며 “다른 사람들이 관심 없을 때 우리 넷(장기호,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은 그런 음악을 즐겨 들으며 선망했다. 퓨전 재즈 시장을 봤고, 그런 음악을 실행시켜보자고 했다”고 떠올렸다.

그의 기억 속 전태관은 스티브 겟, 데이브 웨클 등 1980년대 세계적으로 출중한 드러머들을 좋아했다.

“특히 태관이가 칙코리아 일렉트릭 밴드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웨클에 꽂혀 있었어요. 깔끔하고 정돈되고 정확한 드럼 소리를 좋아했죠. 그들이 구사하는 테크닉이 당시 연주자에게는 첨단 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그는 전태관과 함께 활동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친분을 이어갔다.

그는 “태관이가 몇년 전부터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과 가수 김현철, 나얼 등과 성경 공부 모임을 했는데 저도 몇달 전부터 참여했다”며 “모두 태관이를 위해 기도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성경 공부 모임 멤버들은 전태관이 힘든 상황일 때마다 자기 일처럼 나서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호는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전태관은 묵묵히 음악의 뼈대를 세워주는 작업을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김종진이 작곡했지만 사운드의 중심에는 전태관의 드럼이 있었다며 “스스로 작곡보다는 연주에 더 관심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운드의 중심”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울겨울’ 출신이자 빛과소금 멤버 박성식도 “우리가 여러 음악 카페에서 연주하며 교류하던 시절, 막 20대에 들어선 태관이를 처음 봤다”며 “농담도 잘하는 유쾌한 면이 있었지만 성품은 선비였다”고 장기호와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태관이는 드러머로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리듬을 표현하는 독보적인 스타일이었어요.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감 있는 사운드로 밴드의 중심을 잡았죠. 음악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태관이는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심장을 울려주는, 엔진 같은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독립해 왕성하게 음악 활동하는 모습을 응원하곤 했다”며 “빛과소금보다 대중적인 인지도도 좋았고 앨범도 많이 내며 활동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수하는 밴드가 많지 않은데 이들은 기념비적인 밴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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