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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故맹유나 부친’ 맹정호 대표 “노래로 사람들 위로하고 싶었던 딸, 꼭 기억해줬으면”

아직 온 세상이 혹한에 싸여있는 1월초, 가요계에 한창 피어나는 꽃 같은 가수 한 명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2월 26일 심장마비로 스물 아홉 짧은 생애를 마감한 가수 故 맹유나의 소식이었다. 2005년에 데뷔해 최근 정규 3집을 준비하고 있던 고인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과 소속사는 황망한 마음을 정리하고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고인의 아버지는 그의 소속사 대표이기도 하다. 故 맹유나의 아버지이자 소속사 JH엔터테인먼트 맹정호 대표의 목소리에서는 딸을 가슴에 묻는,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허망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딸의 뜻을 지켜 세상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인을 계속 발굴해야겠다는 의지도 드러났다. 맹 대표는 9일 오후 ‘스포츠경향’과의 통화를 통해 심경과 바람을 밝혔다. 이하 그와의 일문일답.

고 맹유나. 사진제공|JH엔터테인먼트

- 가수 조용필의 매니저 출신 제작자라고 들었다.

“1989년 조용필의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늘 지금처럼’ 때까지 가수 이예린을 제작했고, 김흥국과 배따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리고 아이돌 그룹 지오 등을 제작했다.”

- 딸은 언제부터 가수의 꿈을 꾸었나.

“중 3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윤석호 감독이 당시 만들던 드라마 <봄의 왈츠>의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참여 가수를 찾고 있었는데 당시 박정원 음악감독과 친분이 있었다. 딸의 음색을 좋게 봐줘 드라마 OST 수록곡 ‘플라워’를 불렀고 이후 일본에서 데뷔했다. 아기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치곤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니 실력도 늘더라.”

- 가수 데뷔를 만류했다고 들었다.

“워낙 이쪽 분야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좋고 주변에서도 잘 한다고 하니 결국 하게 됐다.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당시 활동이 쉽지 않았던 일본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가수라고 판단했다.”

- 아버지가 왜 소속사 대표가 됐을까.

“보통 자녀를 소속가수로 두는 아버지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다른 곳에 부탁도 해봤다. 하지만 아이가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고, 내 생각에는 화초같은 아이다. 마음이 너무 여리다보니 낯선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 그러던 중 ‘아빠가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맡았다.”

- 2007년 일본에서 데뷔하고, 2008년 12월 국내 데뷔 앨범을 냈다. 3집을 준비 중이었다고 하던데.

“올 6월 발표를 염두에 두고 곡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 제작 중인 앨범을 낼 생각은 안 해봤다.”

- 제작자로서의 계획은?

“좋은 소리를 갖고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고 멋진 음반을 제작하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아이돌 가수 위주로 음악이 산업화되고 글로벌화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뮤지션들이 활동하는 터전을 만들고 싶다.”

- 대중들이 딸을 어떤 가수로 기억해주면 좋겠나.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곡은 남아있다. 유나가 살아있을 때 불렀던 곡이 위로와 위안을 줬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부를 수는 없게 됐지만 많은 노래를 하늘에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유나는 스스로 곡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했다. 그 뜻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맹유나라는 가수가 있었고, 음악을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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