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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춘천풍물시장] 추억과 재미가 가득한 도심 속 명물

춘천풍물시장 입구

강원도는 한반도 내륙의 섬이다. 험준한 지형에 갇혀 있고, 남북의 대립으로 많은 제약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강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통일의 훈풍’ 속에 강원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동안 낙후돼 있던 강원도가 남북 경제교류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준비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스포츠경향>은 연중기획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을 마련했다. 강원도의 수많은 시장을 소개하고, 그곳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두 번째 순서는 ‘춘천풍물시장’이다.

‘춘천풍물시장’에는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추억의 먹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사진|엄민용 기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장에 가자고 하면 신바람이 났다. 장에 가려면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장에 가서는 별의별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의 왁자함은 심장을 두근케 하고, ‘세상은 이런 것이다’ 하고 들려 주는 듯했다. 호떡이나 어묵 등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시장에 갔을 때였다. 게다가 어머니가 하얀 고무신이나 새옷을 한 벌 사주시기라도 하면 마치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양 신이 났다. 그 무렵, 시장은 눈과 입이 호강하는 것은 물론 마음이 살찌는 공간이었다.

임병철 춘천풍물시장운영회 회장이 춘천풍물시장의 ‘역사’와 현황을 들려주고 있다.

그러한 추억의 시간을 지금도 간직한 곳이 있다. ‘춘천풍물시장’이다. 인제·양구·화천 등 인근의 깊은 산과 맑은 물에서 나온 풍부한 산물들이 4계절 넘쳐나는 곳이다. 누구의 노래처럼 있을 것은 다 있다. 따라서 ‘춘천풍물시장’에 들어서면 세상을 알 수 있다. 쑥이 보이면 이른 봄이요 미나리가 나오면 늦은 봄이라는 식이다.

‘춘천풍물시장’에는 전통시장답게 인삼 등 많은 건강식품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엄민용 기자
‘춘천풍물시장’에는 전통시장답게 약대추 등 많은 건강식품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춘천풍물시장’에는 전통시장답게 겨우살이 등 계절에 맞는 많은 건강식품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엄민용 기자
‘춘천풍물시장’에는 전통시장답게 백복령 등 많은 건강식품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러다가 100원을 놓고 흥정을 벌이고, 죽어도 못 깎아 준다고 해 놓고는 가는 발걸음 붙잡아 한 웅큼 덤을 쥐여 준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우리의 삶이요 문화다.

경춘선 남춘천역에서 대로변을 따라 춘천역 방향으로 100m쯤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춘천풍물시장’이 지금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2010년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아니 그 이전의 도시형성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디든 도시가 들어서면 ‘상인’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춘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도시 곳곳에서 흔히 ‘노점’이라는 것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에서 거리정비사업이 벌어졌다. 외국인들에게 깔끔한 거리풍경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유. 이 때문에 춘천의 명동을 비롯해 인근에서 산발적으로 운영되던 100여 노점들이 약사동 복개하천지역에 모여 장사를 시작했다. 옛날 장터의 문화를 간직한 민속 장터가 태동한 것이다.

군것질도 시장 구경의 재미 중 하나다. 겨울 추위를 녹여주는 어묵꼬치. 사진|엄민용 기자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도는 빈대떡과 여러 전들. 사진|엄민용 기자
수수부꾸미

하지만 약 10년 전 춘천시가 생태하천복원사업을 벌이면서 20여 년 동안 장사를 하던 복개하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이 지금의 ‘온의사거리~호반교 사이에 고가(高架)로 설치된 경춘선 복선전철 하부공간’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잡은 후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특히 5일장이 펼쳐지는 장날(2·7일)에는 인근 시·군의 손님들은 물론 수도권 지역의 관광객까지 몰려들면서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일에도 늘 자리를 지키는 143개의 고정점포에다 5일장에만 들어서는 노점과 인근 지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보따리상까지 400여 점포와 손님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오래전 사진 속에서나 보던 시장의 왁자함이 그대로 연출되는 것.

물론 장날이 아닌 평소에도 ‘춘천풍물시장’은 구경거리가 많고, 살 것 또한 많다. 여느 시장에서는 접하기 힘든 자랑거리도 많다. 그중 최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펼쳐지는 ‘새벽시장’이다. 근교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그날그날 수확한 싱싱한 농산물을 새벽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저렴한 가격에 판다. 농가 어르신들이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이나 장아찌, 직접 수확한 깨로 짠 참기름·들기름, 인근 산과 들에서 가져온 산야채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현재 참여 농가는 145곳이다.

‘승주네식당’의 부자(父子)
춘천풍물시장 내 맛집 중 하나인 ‘승주네식당’에서는 임연수어·고등어·양미리 등 제철 생선구이가 인기다. 사진|엄민용 기자

새벽 수산시장은 흔하다. 하지만 새벽 농산물시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새벽시장 덕에 인근 주민은 물론 캠핑을 온 외지의 손님들도 싱싱한 먹거리를 값싸게 사와서 아침상에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적은 소득이라도 하루하루 얼마의 돈이 필요한 영세농가에는 그날의 양식을 내주는 ‘화수분’ 같은 공간이 새벽시장이다. 시장의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지난해 열린 야시장이 대박을 쳐 올해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강원도청 제공

여기에 또 하나 ‘춘천풍물시장’의 자랑거리로 떠오른 것이 지난해 첫선을 보인 ‘야시장’이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6시부터 들어서는 ‘꼬꼬 야시장’은 지난해 팝페라·품바·초대가수 공연에다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행사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도토리묵말림과 갈비튀김 같은 이색 음식에다 필리핀 푸드, 특별 메뉴로 선보인 닭갈버거 등이 시민과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대박’이 났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올해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며, 야시장이 열리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춘천풍물시장’은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다. 이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당당하다. 자신들만의 문화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새벽시장과 야시장의 색다른 재미, 평소 상인과 손님 사이에 오가는 훈훈한 정은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전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온착유로 건강한 들기름·참기름을 내놓는 ‘풍물방아’ 진열대.
춘천풍물시장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인 수수부꾸미를 내놓는 ‘낙원떡집’.

활기가 넘치는 시장에는 ‘명물’들도 많다. 아버지는 생선가게를 하고 아들은 생선구이 맛집 ‘승주네식당’을 운영하는 부자, 수수부꾸미가 맛있기로 소문난 ‘낙원떡집’, 저온착유로 ‘건강한’ 참기름·들기름을 뽑아내는 ‘풍물방아’가 시장 관계자들이 귀띔해 주는 대표 얼굴이다. 하지만 시장을 거니는 동안 내내 고소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들이며, 도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갖가지 상품들을 늘어놓은 가게들은 저마다 ‘명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 용산에서 ITX 청춘열차를 타면 1시간 만에 도착하는 남춘천역. 그곳에서 걸어서 5분이면 만나는 ‘춘천풍물시장’. 즉 시장의 달달한 추억과 아기자기한 재미에 푹 빠지는 데는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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