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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인제 대회 현장을 가다] 거친 산길 달리며 힐링 “한계 넘으며 인생을 배우죠”

“업다운이 있는 산길.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트레일 러닝은 인생과 같아요.”

지난 27일 트레일 러닝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영어교사 남궁하린씨(31)는 산길 13㎞를 완주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오르막과 내리막길, 끌어주는 사람 없이 나홀로 레이스. 남궁씨는 간간히 나오는 이정표만 보고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2시간15분44초 만에 완주. 남궁씨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꼴찌는 면했다”며 활짝 웃었다.

남궁하린씨가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서 열린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 결승선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사진제공 한재훈(큰산)

이날 강원도 인제군 자작나무숲에서는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렸다. 산길 13㎞를 3시간 안에 주파하는 이벤트였다. 트레일 러닝은 산, 강, 사막 등 자연 속에서 먼 길을 오랜 시간 달리는 종목.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세대 스포츠다.

참가자는 200명 정도였다. 여성은 약 50여명, 십여명에 이르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영하 날씨 속에 낙오자 없이 거의 모두 완주했다. 기록이 좋든 나쁘든 자연 속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마침내 완주한 기쁨은 모두 같았다.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재훈(큰산)

박광원씨(41)는 1시간14분15초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마라톤을 하다가 2017년 트레일 러닝을 시작한 박씨는 “오를 때는 내 힘으로 밀고 오른 뒤 내리막에서 체중을 싣고 빨리 내려오는 스피드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국내 최고 대회인 코리아 50K도 완주한 경험이 있고 오는 7월 중국에서 열리는 250㎞짜리 고비 사막 레이스 출전도 준비 중이다.

여자 1위는 배우 지망생 정현성씨(26)가 차지했다. 기록은 남자 입상권과 비슷한 1시간20분37초다. 놀라운 것은 정씨가 이번에 처음으로 트레일 러닝 대회에 출전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2019년 철인 3종 대회에 나서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작년 9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러닝머신을 탔다”며 “남자 선두권에 처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마라톤도 아직 뛰어보지 못한 정씨는 “힘들게 오르막을 오른 뒤 내리막길을 보면 힘든 게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배우 지망생 정현성씨가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서 열린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여자 1위를 차지한 뒤 활짝 웃고 있다. 김세훈 기자

미국 국적 남성 머그스 알렉센더(36)는 “한국에서 4년 동안 살면서 트레일 러닝을 꾸준히 했다”며 “좋은 경치, 길이 자꾸 바뀌는 상황 속에서 달리는 게 비슷한 코스를 비슷한 페이스로 뛰어야하는 마라톤보다 재밌다”고 말했다. 한국에 9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영국 여성 제니퍼(31)는 “스파르탄 레이스를 하다가 작년부터 정기적으로 트레일 러닝을 하고 있다”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는 게 너무 재밌고 상쾌하다”며 웃었다.

가족과 함께 출전한 참가자도 있었다. 평소 마라톤을 즐기는 이계숙씨(50)는 남편, 두 자녀와 함께 2시간30분 정도에 레이스를 마쳤다. 이씨는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곳,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흙길을 뛰는 게 너무 좋다”며 “도로를 뛸 때보다 하중이 적어 몸도 덜 피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주 홍콩에서 열린 100㎞짜리 트레일 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이씨는 “20~24시간에 완주할 경우 주어지는 브론즈 트로피를 받아왔다”고 덧붙였다.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 참가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을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김대현

박혜원씨(32)는 “지난 2년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 뛰었고 트레일 러닝은 10~20㎞ 정도만 참가했다”며 “코스별 작전을 세운 뒤 그것에 따라 걷고 뛰는 게 재밌다. 집중력과 몰입도가 높다는 게 특징”이라고 자평했다. 이무웅씨(76)는 “1998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사막 레이스, 울트라 마라톤도 해봤다”며 “자기 페이스로 쭉 달리는 마라톤보다는 업다운에 따라 걷고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트레일 러너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서 화이트 트레일 러닝 대회를 마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한재훈(큰산)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에게는 4㎏짜리 인제 쌀과 인제군 상품권, 완주증이 주어졌다. 출전비는 5만원이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 대표이사는 “홍보를 겨우 한 달 했는데 예정된 인원 200명이 금방 차 더 이상 받지 못했다”며 “초보자와 여성 참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트레일 러닝은 무엇?

트레일러닝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기 때문에 국제기구들도 젊다. 미국트레일러닝협회는 1996년, 영국협회는 1991년 각각 설립됐다.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는 2013년 만들어졌고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2015년 승인받았다. 대회 거리는 5㎞~100마일(161㎞)까지 다양하다. 여러 날 진행되는 대회인 경우에는 200㎞ 이상 코스도 있다. 코스별로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대회별 기록 비교는 의미가 없다. 물과 의약품을 제공하는 보급소는 5㎞ 또는 10㎞마다 설치된다. 대부분 대회는 하루짜리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대회에서는 장비, 숙소 등 체계적인 보급이 이뤄진다. 물과 의료치료 이외 다른 보급이 없는, 더 힘든 대회도 있다. 참가자 수는 좁은 길 등으로 인해 제한된다. 울트라 트레일 마운트 후지(일본·161㎞),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러닝(남아공·250㎞) 등이 세계적인 대회들이며 북미에서는 주로 100마일 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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