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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청정 고성’의 맛을 파는 천년고성시장

천년고성시장을 알리는 구조물. 엄민용 기자

강원도는 한반도 내륙의 섬이다. 험준한 지형에 갇혀 있고, 남북의 대립으로 많은 제약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강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통일의 훈풍’ 속에 강원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동안 낙후돼 있던 강원도가 남북 경제교류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준비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스포츠경향>은 연중기획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을 마련했다. 강원도의 수많은 시장을 소개하고, 그곳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다섯 번째 순서는 ‘천년고성시장’이다.

천년고성시장 전경. 엄민용 기자

강원도 최북동부에 위치한 고성군은 북으로는 세계적 명산인 금강산을 경계로 통천군과 접하고, 동쪽은 동해, 서쪽은 향로봉을 경계로 해서 인제군과 닿아 있다. 남으로는 속초시와 경계를 이룬다.

태백산맥과 동해바다의 영향을 받는 고성은 겨울철이면 연일 혹한이 계속되는 영서지방과 달리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반면 여름철에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영서지방보다 서늘하다. 여기에 ‘굴뚝 공장’이 단 하나도 없는 곳으로, 무공해 청정지역을 자랑한다. 전국이 연일 ‘미세먼지’로 신음하지만, 이곳은 미세먼지가 제로다.

이렇게 물 맑고 빛 좋은 만큼 이곳에 나는 산물 또한 건강하다. 봄이면 금강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에서 온갖 산채들이 기지개를 켠다. 그중에서도 두릅이 고성의 대표 산나물이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나물이 나온다. 귀한 참나물이며 사초싹(삽주싹), 누리대 등을 이곳 사람들이 ‘막나물’로 부를 정도다.

천년고성시장의 가장 큰 손님은 국군 장병들이다.
천년고성시장 장날 풍경.

여름엔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감자와 옥수수가 여물고, 가을이면 송이 등 온갖 버섯류가 몸을 일으킨다. 특히 금강산의 정기를 머금은 이곳의 송이는 때깔부터 다르다. 당연히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한다.

겨울에도 고성의 산물은 쏟아진다. 그 가운데 ‘방어’는 외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곳의 대표 먹거리다. 대문어도 유명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고성 앞바다에서 잡힌 방어가 제주의 것보다 몇 곱절은 맛있다”며 엄지를 곧추세운다. 최근 들어 적으나마 명태들이 다시 동해를 찾아오면서 러시아산이 아닌 국산 명태를 말리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천년고성시장 상인회 회장인 함완식씨가 시장의 청사진을 들려 주고 있다.

이들 건강한 제철 먹거리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고성군청 근처에 자리한 ‘천년고성시장’이다. 이곳에 시장이 들어선 것은 6·25전쟁 직후다. 2일과 7일이면 5일장이 서기도 하는 이곳은 고성군의 중심에 위치해 찾기 편하고, 거진시장과 함께 고성군의 지역경제를 떠받친다.

1980년대 중반에 지금의 현대식 뼈대를 갖춘 ‘천년고성시장’은 이후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비가림시설, 어시장 리모델링, 진입도로 확장, 화장실 정비, 전용 주차장 확보 등을 통해 깨끗하고 편리한 전통시장으로 거듭났다.

95개의 점포로 구성된 시장은 속된 말로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시절’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5일장이 서는 날에는 외지에서 찾아온 ‘장돌림’ 상인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난전까지 가세해 북새통을 이룬다.

말린 고사리와 꽈리 등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팔리고 있다. 엄민용 기자

봄에는 싱싱한 나물을 사러 오는 외지인이 많고, 여름에는 해수욕장 등을 찾은 피서객들이 들르기도 한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5일장이 손님을 기다린다. 하지만 많은 전통시장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예전보다 쇠락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주 인구가 줄고, 교통이 좋아져 외부로 나가 물건을 구입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진통이다.

천년고성시장의 상점들. 엄민용 기자
지난해 동해에서 잡힌 것으로 추정되는 명태들을 천년고성시장 안 수산물 가게에서 말리고 있다. 엄민용 기자

이에 상인회와 군청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늘 머리를 맞댄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 중 하나가 ‘청년 창업을 지원해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다. 마트 등 대형 점포로 인해 경쟁력을 잃은 상점은 접고, 먹거리가 특화된 상점을 입점시키는 일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는 지역 주민들은 물론 외지인들부터도 ‘대박 가능성’을 인정받은 ‘맛집’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상인회와 군청의 판단이다.

천년고성시장의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간성닭집. 엄민용 기자
간성닭집 주인장이 닭강정 맛자랑을 하고 있다. 엄민용 기자
간성닭집의 프라이드 치킨. 엄민용 기자

‘천년고성시장’에서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까지 만족시켜 줄 맛집 첫 손가락에는 ‘간성닭집’이 꼽힌다. 무게가 1.2㎏에 이르는 큰 닭을 옛날 방식으로 튀겨내는 이곳의 통닭은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을 만큼 맛있기로 유명하다. 주말이면 길게 늘어선 국군 장병들이 그 맛을 보증한다. 특히 이곳 주민들은 “이 집 닭강정을 먹어 보면 ‘속초의 닭강정’은 못 먹는다”고 입을 모은다.

천년고성시장 내 맛집 가운데 한 곳인 ‘청우맛집’. 엄민용 기자
천년고성시장 내 맛집 가운데 한 곳인 ‘길서방네식당 & 감자옹심이’. 엄민용 기자

‘청우맛집’도 가게 이름 그대로 이미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임연수어·가자미·고등어 구이와 갈치조림 등을 내놓는 이 집은 딸려 나오는 밑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밥도둑이다. 가격 또한 1만원 이하로 누구나 부담없이 맛있는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여기에 고성 지역 막걸리 ‘달홀주’ 한잔 곁들이면 웬만한 한정식이 부럽지 않다.

이 밖에도 ‘길서방네식당 & 감자옹심이’와 ‘진미식당’도 외지인들로부터 인정받은 맛집이다. 여기에 청년창업 1호점인 ‘어영차 바다야’ 또한 어묵과 생선구이 등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칡소 고기들. 엄민용 기자
‘고성 칡소 전문 정육점’ 안주인이 칡소 자랑을 하고 있다. 엄민용 기자

한편 ‘천년고성시장’에서 최근 가장 핫한 집은 ‘고성 칡소 전문 정육점’이다. 전국에 3900마리밖에 없다는 칡소의 고기를 팔기 때문이다. 칡소는 이중섭의 <소> 그림과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 ‘얼룩빼기 황소’로 등장하는 우리 토종의 소로, 고기 맛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이 적으면서도 부드럽고 특유의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개업 4개월 만에 시장의 대표 점포로 떠올랐다.

상인회와 군청은 이들 맛집을 증심으로 더 많은 맛집들을 유치해 시장의 변화를 이끌 요량이다. 인근 속초·강릉의 전통시장들이 맛집들로 젊은이들을 끌어모으면서 활기를 되찾은 점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전략. 오늘 가도 좋지만 내일 가면 더 좋을 곳이 ‘천년고성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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