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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석규는 왜 ‘우상’을 인상파 그림에 비유했을까

배우 한석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인상파 그림이 처음 등장했을 땐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화풍이 추세였어요. 그러니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딱 보고는 ‘그림을 왜 이렇게 그려?’라는 사람도 있었겠죠. 그리 잘 팔렸을리도 없고요.”

배우 한석규가 신작 <우상>(감독 이수진)의 미덕을 묻자 운을 뗐다. 난데없이 ‘인상파’란 단어가 나오자 현장 기자들 머리 위엔 물음표로 가득한 말풍선이 매달렸다. 기자 청중의 반응에 상관없이 인상파 화가와 그림에 대해 강연하던 그에게 누군가 ‘우상’과 ‘인상파 그림’을 새롭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비교하고 싶었던 거냐고 짚으니, 그제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우상>이 많이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전 반문하고 싶더라고요. 어렵긴 해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느냐라고요? 어렵게 돌아왔더라도 영화가 무슨 얘길 하고 싶었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된 거라고 봅니다.”

한석규는 최근 <우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설경구, 천우희와 협업 소감, 두 얼굴의 정치인 ‘구명회’ 역을 선택한 이유, 배우로서 지향하는 바 등을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독특한 화법으로 공개했다. 한석규는 화두를 던졌고, 화두를 이해하는 건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었다.

■한석규, 그 ‘우회적 화법’에 빠져보라

이번 작품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예수가 그런 말을 했어요.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마르지 않는 재산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뤘으나, 다음 날 죽었다’고요. 쉽지만 정국을 탁 찌르는 비유 아닌가요? 이렇게 뒤통수 후려치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구명회’란 역을 수락했고요.”

이 문구가 지금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듯 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답변은 늘 삼단논법으로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리스가 주창한 형식 논리학의 대표적 전통적 추리 논법을 해석해야 하는 몫은 오롯이 기자들 몫이었다. ‘한석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었나’는 질문이 있었다. 그가 ‘말씀’했다.

“(세 문장을 말한 뒤)이 말이 제겐 그렇게 들려요. ‘한석규가 있었다, 그는 연기를 통해서 많은 걸 이루고 싶었다. 결국 정점에 올랐고 그날 밤 죽었다’고요.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였을까, 연기와 작품으로 뭘 바랐던 걸까를 지금까지 생각해왔는데, 답은 하나더라고요. 연기를 하고 싶었던 처음 그 마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구나. 예전엔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면, 이젠 ‘연기가 한석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직업이다’는 걸 깨달았어요.”

실제 그에게도 전적으로 믿었던 ‘우상’ 혹은 ‘허상’이 있었느냐란 질문엔, ‘법정스님’이 등장했다.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제가 생각하는 걸 꾸준히 행동해나가는 것 뿐이죠. 인터뷰에서 계속 황당한 얘길 하는 ‘나’라는 사람이 그냥 이렇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로선 정성을 다해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리곤 죽었다’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법정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없어진다. 그러니 내가 썼던 글을 모두 없애다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요.”

‘우상’ 속 한석규와 설경구.

■“설경구·천우희, 몰입하려고 꽤 노력하는 좋은 배우들”

작품을 선택할 땐 캐릭터보다는 이야기의 주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캐릭터의 개성이나 분량이 남다르더라도,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단다. 그와의 담론은 재미있어야 했다. 기필코.

“연기를 오래해왔고, 또 앞으로도 오래할 건데 영화 한 편에서 증폭 있는 캐릭터라고 해도 제게 얼마나 새롭게 다가오겠어요? 그보다는 전 다양한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24년간 해온 24편 필모그래피를 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프리즌> 등 다 다르잖아요? 캐릭터의 진폭보다는 매력있는 얘기에 끌려서 작품을 해왔으니까요. 뉴 코리안 시네마(New Korean Cinema), 새로운 한국영화를 하려고 늘 애썼거든요. 아직도 제겐 숙제고요.”

팽팽한 연기 대결을 펼친 설경구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보다 4살 어리지만, 학문이 나보다 좋으면 선배죠. 연기 동료고 동시대를 배우로서 살아온 친구이기도 하고요. 배역에 몰입하려고 꽤 자학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고요. 그래서 누가 봐도 ‘꽤 연기를 하는구나’라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어요.”

천우희에 대해선 조금 우려 섞인 조언도 내놨다.

“정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현장에서 제가 ‘이젠 몰입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어요. ‘몰입’이란 게 썩 좋진 않은 것 같거든요. 저 역시 ‘몰입’이란 개념에 속아서 사기를 많이 당했기 때문이죠. 아마 천우희는 출발 단계라 몰입을 많이 요하는 작품들만 해왔는데, 당분간은 ‘몰입’을 덜 해도 되는 역을 맡았으면 좋겠어요. 밝은 모습이 많이 등장하거나 몰입을 전혀 안 해도 되는 작품도 괜찮고요.”

한석규와의 대화는 ‘몰입’할 수 밖에 없었고, 대개는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마치 꼬이고 꼬인 문제를 기쓰고 풀었더니 정답이 ‘0’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 그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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