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인터뷰] 천우희 “故 김주혁 사고에 충격, 한동안 힘들었죠”

배우 천우희,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한동안 힘들었어요.”

배우 천우희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생글거리는 얼굴 뒤에는 혼자 끙끙 앓았던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많은 이의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남은 고 김주혁 때문이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아르곤>이 종영되고 한달 뒤 김주혁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의 사고가 터진 뒤 마음이 많이 흔들렸어요.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기하는 게 대체 누굴 위한 것인가. 왜 내게 이런 힘든 일이 터진 걸까.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혼자 있는 순간만 되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작품을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의욕도 떨어졌고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를 끝낸 이후에도 오랫동안 슬럼프였단다. 극 중 비참한 일상을 헤쳐나가는 여자 ‘련화’를 만나 더욱 우울감과 분노, 증오감이 커졌다고도 고백했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좋은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제안 받아도 그걸 해낼 여력이 없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 연기와 작품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했죠. 대신 여행도 다녔고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좀 괜찮아지더라고요. 쉬는 7개월간 연기 이외의 것들을 하니 나름 치유가 된 것 같아요.”

천우희는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집요하기로 소문난 이수진 감독과 재회한 소감부터 영화를 위해 눈썹까지 밀었던 열정까지, 다양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차 마시고 싶은 한석규·술 마시고 싶은 설경구”

그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수진 감독의 전작 <한공주>(2014)다. 무서운 연기력으로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충무로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우상>에 출연한 것도 바로 이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상>을 수락한 첫번째 이유는 이 감독과 <한공주>보다 더 좋은 합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이 감독에게도 그동안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잘 컸죠?’라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하하. 두번째 이유는 한석규, 설경구란 조합 때문이었어요. 이들과 호흡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정말 궁금했거든요.”

완성본은 그의 기대만큼 나왔단다. ‘불친절한 영화’란 평가에도 아쉬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거라며, 무한한 신뢰를 내보였다. ‘찰떡 콤비’다웠다.

“이 감독은 저와 잘 맞아요. 저도 감독처럼 보통 아니게 집요한 배우거든요. 하하. 같은 장면을 계속 촬영한다고 해서 흥미가 떨어지진 않아요. 오히려 감독의 완벽한 요구 사항을 해내고자 의지에 발동이 걸리는 편이죠. 하면 할 수록 에너지가 더 솟아난다고나 할까요.”

한석규·설경구와 함께한 현장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한석규 선배가 차 한 잔 하면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설경구 선배는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한석규 선배는 솔직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제 얘기도 들어주거든요. 나이와 경력 차이가 있어도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줘 고마웠고요. 또 설경구 선배는 말 그대로 ‘츤데레’(무심한 듯 배려하는 사람) 스타일이에요.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모든 걸 다 기억해서 배려심 넘치게 챙겨주더라고요.”

배우로서도 존경하게 됐다고.

“두 사람 모두 배우로서 자세나 그 내공이 어마어마해요. 이번 작업으로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제가 열의를 갖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 내공과 재능의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정말 멋있었어요.”

■“드센 이미지? 저도 계속 고민 중이에요”

이번 작품을 위해 눈썹까지 밀었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 하니, 그것보다는 밖을 못나가 울적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집에서 칩거했어요. 눈썹을 한 번 밀면 다 자라기까지 한달 반이 걸리는데, 촬영 때문에 두번이나 밀어야 했거든요. 주변 사람들도 안 만나고 꽁꽁 숨겨왔어요. ‘집순이’긴 해도 자의로 집에 있는 것과 타의로 집을 못나오는 건 상당한 차이가 있더라고요. 3주간 집에만 있기도 했는데, 울적해지기도 했고요.”

그의 열정 덕분에 ‘련화’란 캐릭터는 스크린 위로 생생하게 재현됐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데엔 성공했지만, 배우로선 드센 이미지가 강조되는 역효과도 났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없을까.

“저도 항상 ‘왜 이런 어려운 역만 주어지나’란 생각을 해요. 사랑스러운 역도 정말 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나름의 자부심도 있어요.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캐릭터를 제가 소화한 거잖아요? 지금도 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계속 이런 선택을 하면서 색깔을 구축할지, 아니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기존의 색을 지우는 게 맞는 건지. 아직도 답을 못 내리겠어요.”

고민도 선물하고 시련도 선사하는 연기를, 그럼에도 왜 포기하지 않느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가 ‘와하하’ 웃었다.

“그러니까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못 놓을까요? 하하.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이런 시련의 시기는 누구나 겪는 거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요. 전 지금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또 이 고민은 평생 풀어야할 숙제기도 하고요.”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