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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2세 여오현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난 머리로 배구한다”

현대캐피탈 여오현이 4일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복합베이스캠프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여오현(41·현대캐피탈)의 목소리는 언제나 쉬어 있다. 배구 시작 이후엔 늘 이랬다. 쇳소리가 가득한 중고음의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코트에 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 1일 V리그 시상식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여오현은 “어느새 이게 내 목소리가 된 것 같다”고 웃으면서 “코트에서 만큼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이 들었다고 옆에서 무게잡고 있는게 아니라 더 소리 지르고, 파이팅도 더 강하게 한다”고 이야기했다.

1978년 생인 여오현은 현재 V리그 최고령 선수다. 체력 소모가 큰 배구 선수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이다. 최고 시속 120㎞의 강서브나 강스파이크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수비 전문 선수로 뛰어난 반사 신경과 강한 체력을 요구하지만 4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주전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오현은 지난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신기에 가까운 수비력으로 다시 한 번 현대캐피탈을 정상에 올려놨다. 최태웅 감독은 우승을 확정한 뒤 “여오현은 나이를 꺼꾸로 먹는 것 같다. 포스트시즌이 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여오현의 플레이를 보면서 후배들이 힘을 냈다. (외인 선수인) 파다르까지 ‘여오현을 존경한다’고 할 정도”라며 경의를 표했다.

선수 생활을 말년을 보내고 있는 여오현은 “배구장에 나오면 20대 때보다 지금이 설렌다. 이 나이에도 코트에서 뛰면서 관중의 환호를 받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지난 챔프전에서는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뛰었다”며 미소지었다.

여오현은 V리그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배구 선수로는 175㎝·72㎏이라는 작은 체구지만 리베로로서 당분간 후배들이 다가서기 어려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치열함으로 코트를 지켜온 그의 가치는 우승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 9개의 챔프전 우승 반지를 수집해 이 부문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2000년 삼성화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0년간 코트를 뛰면서 챔프전을 놓친 시즌은 단 한 번(2014~2015시즌 5위) 뿐이다. 이밖에도 역대 최다 487경기 출전 기록에 리베로로 기량을 평가받을 수 있는 디그 성공(4871개), 리시브 정확(7728개), 수비 성공(1만2099개) 등 통산 성적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써내려가면서 4번의 수비상, 2번의 베스트7(리베로), V리그 10주년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가 더 놀라운 것은 단 한 시즌도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다.

“큰 부상이 없어서 가능했다. 최태웅 감독님이 시즌 중에도 철저하게 체력을 관리해주는 부분도 있고, 타고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런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삼성화재라는 강한 팀에서 뛴 것도 행운이었고, (조금 더 기회가 주어지는) 현대캐피탈로 이적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행운이었다.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많은데 돌아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선수다.”

현대캐피탈 여오현이 4일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복합베이스캠프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체력과 운동능력이 20대 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오현이 리시브에서 여전히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은 배구공을 향한 집념과 분석에 있다. 여오현은 “리시브는 감각이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더 중요한 것은 상대다. 주요 상대 선수에 대한 특성이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훈련 때부터 반복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밝혔다. 2015~2016시즌부터는 플레잉코치로 뛰면서도 여전히 리그 정상급 수비와 근성으로 코트를 지킨다. 전성기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그만한 리베로가 없다는 것이 올 시즌을 통해 증명했다. 여오현은 50% 전후의 수준급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했다.

‘세월을 거스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의 치열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여오현은 시즌 끝났음에도 숙소에 출근해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비시즌은 물론 시즌 중에도 식단 조절, 필라테스 등으로 가벼운 몸상태를 꾸준히 유지한다. 구단은 ‘45살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여오현의 도전을 맞춤형 식단과 필라테스 등 개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지원한다. 여오현이 철저한 자기 관리로 롱런하자 여기에 동참하는 후배들도 여럿이다.

여오현은 “얼마나 더 현역으로 코트에 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코트에서 만큼 누구보다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로, 열심히 뛰었던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감독은 “현재 기량이라면 45세는 문제없다”며 믿음을 보였다. 여오현이 2019~2020시즌 코트에 서면 V리그 역대 최고령 선수(2016~2017시즌 방신봉 당시 만 42세)와 타이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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