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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분석] ‘개콘’ 1000회 기획 ① 무엇이 지금의 ‘노잼 콘서트’를 만들었나

대한민국 코미디의 물줄기를 바꿨고, 이후 등장한 예능의 출연자 산실이 됐던 KBS2 <개그콘서트>가 오는 19일 1000회 방송을 내보낸다. <개그콘서트>는 1999년 당시까지 고정됐던 ‘스튜디오 코미디’의 전통을 혁파하고 새로운 시대의 코미디로 20년간 시청자와 호흡했다. 하지만 1000회를 맞아 그 활력의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포츠경향’에서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에 걸쳐 <개그콘서트> 1000회의 의미를 분석하고, 그 위기의 원인과 내부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코미디를 바꾼 양상을 분석한다.

① 무엇이 지금의 ‘노잼 콘서트’를 만들었나

② ‘내부자들’에게 듣는 <개그콘서트>의 과거와 미래

③ ‘스포츠경향’이 선정한 <개그콘서트> 캐릭터 10선

KBS2 ‘개그콘서트’ 최근 방송 장면. 사진 KBS

KBS2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한 개그맨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개그콘서트’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노잼(재미가 없다는 뜻의 신조어)’가 나온다. 그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충격은 다만 <개그콘서트>에 속해있는 개그맨들이 받은 충격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개그콘서트>라는 브랜드가 가졌던 입지가 최근 급전직하하는 모습은 ‘충격’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개 방청형’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KBS2 <개그콘서트>가 오는 19일 방송으로 1000회를 맞이한다. 1999년 9월4일 서울 대학로에서 당시 유행하던 ‘콘서트 형식’의 개그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지상파 TV 안으로 끌어 오면서 방송 예능의 혁신을 가져왔던 역사가 어느덧 20년이 된 셈이다. <개그콘서트>는 그동안 “프로그램의 엔딩 시그널(마지막 음악)을 들으면 한 주가 끝나는 느낌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대중문화 감성의 최전선에서 대중과 호흡해왔다. 하지만 1000회를 맞은 지금, 막연히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건네기엔 무언가 서글프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러가지 수치가 <개그콘서트>의 지금을 보여준다. 과거 20~30%대의 시청률을 쉽게 오르내리던 시청률은 2013년 즈음 15%대로 떨어진 이후 2015년 10%의 벽도 깨졌다. 최근 방송분은 전국 시청률 5~6%대를 전전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갤럽이 매월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서 2015년까지 10위권에 들었지만 지난 2017년부터는 순위권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방송인의 인기 순위에서도 개그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보다는 가수 출신, 배우 출신 ‘관찰예능’ 연예인들의 이름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다.

<개그콘서트>가 왜 이렇게 됐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다채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우선 프로그램의 내부와 외부를 분석하는 큰 줄기로 나뉜다. 내부 동력의 부재로 활력을 잃은 시스템이 큰 원인으로 꼽히고, 외부의 급격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적응의 실패 역시 주요한 이유로 언급된다.

<개그콘서트>는 우선 스타를 잃었다. 단순히 유명한 개그맨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우수한 개그 영재가 KBS의 공채시험에 몰리고 엄선된 인력이 도제식의 교육을 통해 선배들의 정수를 이어받아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는 시스템이 깨졌다는 말이다. 제작진이 최근 프로그램의 혁신을 주창하면서 신인을 등용하지 않고 과거 인기있던 개그맨들을 재차 중용하려는 모습에서 이런 면은 단적으로 발견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박성광, 김준현 등이 활약했던 20대 초반 기수에 이후에는 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개그맨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스타가 나와야 대중이 관심을 갖고 화제가 되는데 이러한 배출 시스템이 멈춰있다”고 짚었다.

KBS2 ‘개그콘서트’ 최근 방송 장면. 사진 KBS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KBS가 가진 ‘공영방송’으로서의 한계 그리고 정체된 제작 시스템 등이 꼽힌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직도 KBS는 예능에 있어 ‘온가족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공영방송으로서의 ‘허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외의 사례를 봐도 그렇지만 매체가 다변화된 지금의 시점에서 모든 세대를 만족시킬 콘텐츠를 한 프로그램에서 방송한다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온가족이 봐야 한다’는 명제는 외모나 성별, 상황에 따른 설정의 수준을 제약하고 이는 아이디어 주체자로서 개그맨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결국 유행어의 반복이나 억지 상황 또는 기괴한 캐릭터들로 1차원적 웃음밖에 줄 수 없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또한 <개그콘서트>는 메인작가가 숱한 연출자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공개 방청이라는 형식과 일요일 오후 ‘황금시간대’라는 편성 부문에서 시대에 맞는 탄력적이거나 유연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거기다 KBS 예능국 내부의 문제인 스타PD들의 외부 유출, 광고나 행사 등 외부에서 <개그콘서트> 출신을 찾지 않는 분위기로 내부 경쟁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어느새 활력이 없는 ‘콘서트’라는 평가가 등장했다.

외부적인 환경변화 역시 결국 <개그콘서트>의 편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 스마트폰 사용자 세대별 사용현황에서 10대는 1년에 86억분을 유튜브 시청에 할애한다. 전통적인 TV 기반 시청층이었던 50대 이상도 20대와 30대의 시간대를 넘어서 79억분에 달한다. 이 시간을 유튜브에 쓴다면 TV를 시청하는 시간은 그만큼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 시청자들은 ‘짜여진 상황’이 아닌 유튜브에서 학습한 ‘진짜’ ‘리얼’이라는 코드에 익숙하다. 인위적인 상황설정으로는 관심을 당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상황을 고집하는 설정 역시 이미 실생활로 훌쩍 다가온 시청자들의 공감 감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다른 콘텐츠들은 가상의 공간인 ‘무대’를 벗어나 현실로 향하는데 언제까지 ‘가짜의 공간’을 고집할 것인가의 문제는 <개그콘서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있어 큰 고민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지금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쇼의 형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제작의 유병재 스탠딩 코미디처럼 스탠딩 코미디로 갈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코미디빅리그>처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타겟팅을 할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프로그램은 결국 발전적 해체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교양의 요소를 더해 KBS1로 자리를 옮겨 가족용 교양오락 프로그램으로 변신해야할지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2 ‘개그콘서트’ 초창기 관객석 모습. 사진 KBS

<개그콘서트>는 1000회를 맞이해 다시 한 번 ‘과거의 용사들’을 무대 위로 불러올려 축하의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스튜디오 코미디의 관행을 과감하게 ‘라이브 방송’의 형태로 끌고나온 그 1999년 당시 도전의 용기가 지금 다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에 취해 ‘우리 이만큼 했으니 칭찬해주세요’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경우 <개그콘서트>의 미래는 1000회의 공력과 별개로 낙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같은 <개그콘서트>의 상황이 대한민국 코미디 자체의 위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유튜브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의 위기는 대한민국 코미디의 위기라기보다는 내부동력을 잃고, 외부적응이 기한을 넘겨버린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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