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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마음의 허기를 달래 줄 연극 처방전 ‘이럴 때, 연극’

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의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백서른세 번째 이야기는 ‘이럴 때, 연극’(최여정 지음 / 틈새책방)이다.

선애:책을 선택할 때 실패확률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요?

성신:왜? 실패했어?

선애:자주 실패하죠. 요즘 일본 현대사나 한·일 국제관계사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평소 자주 보던 분야가 아니라서 고르기가 어렵네요.

성신:<책임에 대하여>를 한번 읽어 봐.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두 사람이 공저한 책.

선애:읽어보셨어요? 어떤 내용이죠?

성신:나도 책만 사 놓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일단 추천!

선애:책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으시죠?

성신:책을 선택할 때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저자를 보고 선택하는 거지.

선애:그렇네요. 좋은 저자가 갑자기 함량 부족의 책을 쓸 리가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책임에 대하여’는 어떤 내용인가요?

성신:두 지성이 대담을 통해 현대 일본의 퇴행과 위기를 파헤치는 내용이지.

선애:딱 제가 찾던 책이네요. 감사드려요. 제 생각에 ‘책을 선택할 때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성신:뭔데?

선애: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거죠. ㅋㅋ

성신:이궁. ㅋㅋ

선애:그러고 보니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저자만 보고 선택한 책이네요.

성신:뭔데?

선애:작년에 북톡카톡을 통해서 소개했던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의 저자 최여정씨가 쓴 신작인데요.

성신:아! <이럴 때, 연극>! 벌써 읽었지!

선애:최여정 작가 정말 좋아요!

성신:최여정 작가는 완전 새로운 발견이었지.

선애:문체가 정말 좋아요. 장소나 공간을 글로 설명하는데, 그곳이 완전히 머리에 그려지도록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순간 저자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느껴지게 만들죠.

성신:맞아! 문장을 통해 만져지는 이미지를 구현한달까….

선애:‘이럴 때, 연극’이란 신작도 그래요.

성신: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상태를 12가지로 나누고, 그럴 때 딱 펼쳐보면 좋을 희곡들을 소개하잖아.

선애: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헤럴드 핀터의 ‘더 러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런 명작 연극들을 소개하는데, 무대와 연출 그리고 배우에 따라 같은 작품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해요.

성신: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최여정 작가는 진짜 고수다!’ 하는 거였지.

선애:왜요?

성신:정말 쉬우면서도 넓고 깊거든.

선애:동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쓰기가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성신:어느 분야든 최고의 고수들은 근원과 본질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거야. 그리고 진정으로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까! 그저 그것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자기 지식 자랑이나 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선애:전적으로 동감! ㅎㅎ

성신:‘이럴 때, 연극’, 이 책이 딱 그래. “연극이란 거 전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제가 설명해 드릴 테니 어서오세요~~~!” 이러는 것 같거든. 책을 이렇게 쓰려면 정말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아.

선애:저는 해럴드 핀터의 ‘더 러버’라는 연극을 소개하는 대목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성신:아! 기막히지.

선애:이 대목 기억나세요?

성신:대충 짐작이 가는데….

선애:“출근을 했다가 돌아온 리처드는 아내가 애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물어요. 세상에 뭐 이런 부부가 있나 싶습니다. 건조하고 짧은 대화, 그리고 침묵 속에 숨겨진 수많은 암시들. 핀터의 회곡집을 열어보면 빼곡하게 적힌 문자 대신 단답형의 대답, 구두점(.), 말줄임표(…), ‘사이’, ‘암전’이라는 지시문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마치 악보를 보는 것 같아요. 그의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들 간의 대화가 아니라 바로 이 정적인 신호들이 보내는 사인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성신:연극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무대라는 공간을 때로는 미술적으로, 때로는 문학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지. 게다가 그 해석의 결과들을 가지고 다시 의미를 추적하거나 심리학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선애:이건 뭐랄까, 마치 마술 같아요.

성신:그러니까, 연극을 대단한 어떤 예술작품으로 대상화해서 경외하고 숭배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최여정 작가는 독자들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가까이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이 연극은 당신을 위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이렇게 보고 만지고 가지면 돼요(속닥속닥).”

선애:‘속닥속닥’이란 표현이 딱이네요.

성신:응응, 오직 나에게만 속닥속닥하는 느낌.

선애:시종 그런 느낌으로 연극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또한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위로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지를 알게 해주죠.

성신:매우 쉬우면서도 매우 깊은, 대단한 책!

선애:이런 책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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