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터뷰]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의 쓴소리 “요즘 선수들 훈련 태도, 동호인보다 못해…내 기록 깨달라”

이봉주가 지난 3일 몽골 울란바토르 아메리칸 호텔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몽골 전통 문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포기를 모르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9)가 침체기를 겪고 있는 국내 육상계와 후배 선수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이봉주는 인터뷰 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하는 입에는 허탈한 웃음도 떠나지 않았다.

이봉주는 지난 6일 몽골 울란바토르 아메리칸 호텔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문 선수 숫자가 너무 많이 줄었다”며 “육상에 흥미를 갖도록 재미나고 게임화된 커리큘럼을 만들어 초등학교부터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상 전문선수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육상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운동이라고 인식하며 야구, 축구, 농구, 골프 등 프로 종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내 학창시절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 육상부가 있었는데 지금은 몇몇 학교에만 있다”며 실업팀도 줄고 있는데 그나마 지자체팀이 남아 있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장거리 기록은 대부분 제자리걸음이다. 남자 마라톤 국내 최고 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세운 2시간7분20초다. 조금씩 좋아지는 단거리 종목 기록에 비해 중장거리 기록은 10년 가까이 멈춰 있다. 한국이 아시아 육상 기록을 갱신한 것도 1994년이 마지막이다.

이봉주는 후배들의 태도를 질타했다. 이봉주는 “요즘 선수들은 국내대회에서 순위 경쟁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기록이 좋아질 수 없다”며 “넓은 무대에서 한국, 아시아 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큰 목표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봉주는 “지도자가 지시하는 것도 못한다면 좋은 기록은 절대 낼 수 없다”며 “마라톤은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지 누가 시킨다고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선수 시절 풀코스를 두 차례 빼고 41번이나 완주했다. 이봉주는 평발에 짝발이다. 육상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때가 처음이다. 이봉주는 “많은 단점을 가진 나도 해냈다. 남들만큼 해서는 남들을 이길 수 없다”며 “후배들 훈련 태도가 동호인들보다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봉주는 “내 기록이 계속 깨져서 이봉주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 밑으로 내려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이봉주가 지난 2일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내 스카이 라인 캠프에서 경기도 육상 꿈나무들과 훈련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봉주는 조기 교육을 통한 저변 확대가 육상계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봉주는 “과거에는 학교 체육 수업에 다양한 육상 종목을 배웠지만 지금은 육상 수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재밌고 흥미롭게 제작된 육상 교육 프로그램을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보급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육상연맹은 국제육상연맹(IAAF)가 개발한 ‘키즈런’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다만 보급 속도가 더디고 지속성이 부족하다.

현재 이봉주는 방송에 출연하고 강연도 다니며 마스터스 대회에 꾸준히 나서고 있다. 이봉주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로 육상 지도자를 주저 없이 꼽았다. 이봉주는 “은퇴 후 많이 고민했는데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더 늦기 전에 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해줄 길이 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또 “한국 마라톤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일을 자주 해 왔다”며 “그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마라톤 박물관도 짓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봉주는 지난 3일 한반도 통일기원 한국·몽골 초원 마라톤에 출전했다. 이봉주는 “몽골인들은 고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심폐기능이 좋다”며 “체계적인 교육만 받는다면 엄청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지금 2시간30분를 뛰는 남자 마라토너가 훈련만 잘 받는다면 2시간대 초반까지 기록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봉주가 지난 2일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내 스카이 라인 캠프에서 경기도 육상 꿈나무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봉주는 지금도 매일 5~10㎞를 달린다. 이봉주는 “이봉주에게 마라톤은 나를 버티게 해준 생명력”이라며 “지금은 기록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지금까지 내가 뛴 거리는 지구 5바퀴(약 20만㎞)는 될 것”이라며 “앞으로 5바퀴를 더 뛰어 10바퀴를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20㎞는 하루 10㎞씩 뛸 경우 2만일, 즉 55년이 필요하다. 이봉주는 “그만큼 오래, 더 멀리 뛰고 싶다는 뜻”이라며 “뛰지 못한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봉주가 지난 3일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내 스카이 라인 캠프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기원 한국 몽골 초원마라톤 대회에서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봉주는 팬들의 사인과 사진 요청에 적극 응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봉주는 “나를 좋아해서 망설이다가 요청하는 것”이라며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요청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나를 국민 마라토너라고까지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며 “앞으로도 마라톤하면 이봉주, 이름 세글자를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