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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희의 문화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우리가 보는 것은 장애인가, 예술인가

나는 어릴 때 리듬체조를 했다. 혼자 머리카락이 길고 옷차림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상으로 체조를 중단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상으로 척추교정용 갑옷을 입어야 했다. 판지를 100개쯤 겹쳐 놓은 코르셋을 생각하면 된다. 한여름의 뜨거운 껍데기는 차라리 견딜만 했다. 땀띠는 물론 커 가는 키에 쓸리는 살갗의 고통보다, 틈만 나면 딱딱한 갑옷을 노크하고 가는 아이들을 더 피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부등호를 좋아했다. 처음부터 내가 어떤 아이인지,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곱 명의 작가가 쓴 테마소설집 ‘파인다이닝’(은행나무)을 읽었다. 그중 황시운의 ‘매듭’이 유독 가슴을 찔렀다. 척추장애인 남편을 돌보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는 낙지전문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에다 막대한 치료빚에 시달린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꿋꿋이 남자 곁을 지킨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실의에 빠진 남편은 아내의 돌봄조차 절망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줄거리는 섬뜩하고 충격적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장애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아티스트를 생각하면 무엇부터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손 외에 신체 다른 부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아니면 천재 음악인이었던 베토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 환상과 연민을 적당히 버무린 감상자들은 작품을 바라볼까? 아니면 장애를 바라볼까?

오래전 읽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는 힘든 일을 겪은 주인공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친구는 연민하는 자기 자신을 좋아한 것이지 진실로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물들이는 한 걸음’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2019 골목콘서트’는 다음달 1일까지 강화·제주·부산·창원·광주·구례를 돌며 장애를 가진 아티스트들과 고려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청년과 주민, 예술가가 어우러져 소통하는 우리 동네 인문 콘서트다. 또 ‘얼쑤사회적협동조합’은 충남장애인부모회 천안지회 전통놀이 동아리에서 시작된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사물놀이·난타·민요·탈춤·마당극 등을 공연하며 문화예술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장애예술인협회(emiji.net)와 장애인문화예술판(artpan.net) 홈페이지를 찾으면 장애인 예술가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수 있다.

장애인 예술가가 원하는 시선은 자신을 단지 예술가로만 바라봐 주는 것이다. 장애인은 인정받았을 때조차 편견에 시달린다. 장애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재희는 누구?

정재희는 문화예술기획자다. 현재 한국 늘상예술 망원동창작가들 소속으로, 일본 컬처컨비니언스클럽 문화 MD로도 활동하고 있다. 앞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을 진행하고 스타응원단을 운영했으며, 팀라루나 대표로서 ‘DDP 서울컬렉션’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등의 쇼 기획과 운영을 맡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신차 발표회와 음반 쇼케이스, 패션쇼, 북콘서트 기획·운영·음악감독 등 다방면에서 재주를 뽐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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