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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의 야구멘터리] 만년꼴찌 KT를 춤추게 한 ‘데이터 콜라보’

KT 오태곤(오른쪽)이 지난 7월18일 잠실 두산전에서 호수비를 펼친 뒤 박승욱의 축하를 받고 있다. KT는 올시즌 수비에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 KT WIZ 제공

지난 7월15일 NC전, KT 1루수 오태곤(28)은 2회와 6회 결정적인 호수비로 상대 흐름을 끊었다. 앞에 떨어진 타구를 따라가 잡아냈고, 1·2간으로 강하게 빠지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걷어냈다. 오태곤은 데뷔 후 대형 내야수로 성장이 기대됐지만 9년째 제 포지션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내·외야를 오가다 올시즌 1루수에 고정됐다.

18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오태곤의 수비가 빛났다. 5-2로 앞선 7회말 두산 오재원의 강한 타구가 오태곤의 다이빙 캐치에 걸렸다. 5-3으로 쫓긴 8회말 2사 1·3루 다시 한 번 오재원 타석에서 오태곤은 강한 타구를 점프해 걷어냈다.

경기가 끝난 뒤 오태곤은 “내가 잘 한 수비가 아니다. 박정환 수비코치님이 찍어 준 대로 서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태곤은 “코치님이 나보다 경기장에 더 먼저와서 경기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박 코치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한 게 아니다. 내가 일찍 오는 건 맞지만 데이터 팀의 도움이 없었다면 잘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막내 구단 KT는 만년 꼴찌였다. 2015년 1군 진입 뒤 3년 연속 꼴찌를 하다 지난해 간신히 9위를 했다. 2019시즌 완전히 다른 팀으로 바뀌었다. 용을 쓰고 애만 쓰다 결국 경기 후반 무너지는 팀에서 경기 내내 팽팽한 승부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됐다. 만년 꼴찌 팀은 가을야구 진출을 다투는 팀이 됐다. 갑자기 슈퍼스타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그만그만한 팀 전력이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팀이 강해지고 자꾸 이기는 비결은 한 가지다. 이기는 경기를 해서가 아니라 지지 않는 경기를 해서다. 지지 않는 경기의 열쇠는 두 곳이 쥐고 있다. 수비와 불펜이다.

KT 쿠에바스(왼쪽)과 황재균이 지난 16일 삼성전에서 승리한 뒤 팬들 앞에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있다. KT는 올시즌 벌써 56승을 거뒀다. | KT WIZ 제공

지난해 한화가 그 길을 걸었다. 만년 하위팀이었던 한화는 수비가 단단해졌고, 불펜이 강했다. 둘은 따로 굴러가지 않는다. 한화 불펜은 스트라이크 존 아래쪽을 공략하는 투수들로 구성됐다. 포크와 투심, 체인지업이 주무기다. 이를 통해 땅볼을 유도한다. 하주석-정은원으로 구성된 젊은 센터 내야진이 불펜투수들과 좋은 시너지를 냈다. 이를 바탕으로 시즌 플랜을 짰지만 하주석의 조기 시즌 아웃 부상으로 모두 무너졌다. 한화 마운드의 땅볼아웃/뜬공아웃 비율은 1.07로 리그 5위다. 땅볼이 많은데 내야 타구의 피안타율이 0.087이나 된다. 리그 평균 0.067보다 훨씬 높은 압도적인 1위다. 한화 투수진이 허용한 전체 타구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 역시 0.329나 된다. 롯데의 0.333에 이어 가장 높다. 수비가 무너졌고, 덩달아 마운드도 무너졌다.

반면 KT의 변화는 수비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KT 수비가 허용한 Babip는 무려 0.349로 타고투저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숫자였다. 리그 평균 0.329에 2푼이나 높았다. KT를 상대하는 타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타율 2푼을 얻고 가는 상황이었다. 수비가 ‘최악’이었다. 올시즌 KT 수비진의 Babip는 0.300으로 뚝 떨어졌다. 두산(0.298)에 조금 뒤진 리그 2위다. 발빠른 외야수 김민혁, 조용호, 배정대 등을 적극 활용한데다 내야 수비의 미묘한 시프트가 수비 효율을 끌어올렸다. KT 박정환 수비코치는 “데이터 팀과 여러차례 논의한 결과 내야수가 잡을 수 있는 타구 방향에 집중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내야를 지나는 수많은 타구 중 내야수가 처리할 수 있는 타구는 타구 초속 150㎞이하, 발사각 11도 이하라는데 합의했다. 이 범위에 들어가는 타구만 추렸고, 이를 바탕으로 시프트를 조정했다. 데이터는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 승부를 가른 오태곤의 호수비는 그 선택과 집중에서 나왔다.

KT가 데이터 팀을 꾸린 것은 2017년 8월이었다. 스포츠투아이에서 야구 기록을 다루던 전희훈씨가 입사하면서 팀 구성이 시작됐다. 올시즌을 앞두고 데이터 팀을 신설했고 나도현 전 운영팀장이 데이터 팀장으로 이동했다. 규모와 역할이 커졌다. 지금은 나 팀장을 비롯 전희훈, 이희원, 신동원씨에다 해외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이충무 차장까지 5명이 팀을 이룬다. 모두 비선수 출신이다. 데이터 팀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추린다. 각 플레이의 결과가 담긴 기록에다 트랙맨, FTS(필딩 트래킹 시스템) 등 ‘트래킹(추적) 시스템’을 통한 데이터를 모으고 종합해 분석한다. 전희훈씨는 “데이터는 두 가지 축으로 활용된다. 일어난 일에 대한 재해석이 하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목표 설정이 또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KT가 경기 중 더그아웃 뒤에 붙여놓는 각종 데이터. 상대 선수에 대한 공략법 등이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혀있다. KT 한 코치는 “자꾸 보고 눈에 익히다 보면 몸이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 이용균 기자

데이터 팀을 만들어둔다고 곧장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현장 스태프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KT는 올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의 상당한 개편이 있었다. 박승민 투수코치, 박정환 수비코치가 모두 42세다. 김강 타격코치는 리그 최연소 코치로 31세다. 비교적 젊은 코칭스태프가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KT의 변화에는 ‘불펜의 재구성’도 결정적이었다. 박승민 투수코치는 투수들의 투구 궤적에 대한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물론 데이터 팀의 분석 결과를 적극 수용했다. 불펜 핵심 투수 주권의 재탄생이 그렇게 나왔다. 전희훈씨는 “주권의 투구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지나치게 구종이 많았다. 6가지 공을 너무 골고루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투구 궤적을 살펴보면 직구와 체인지업이 상당히 긴 거리까지 같은 궤적을 유지하며 날아왔다”고 말했다. 이른바 ‘피칭 터널’이다. 한 투수가 던지는 서로 다른 구종이 최대한 타자 가까이 까지 똑같이 보이게 만들면 당연히 효과적이다. 주권의 체인지업은 상당한 거리를 속구와 똑같이 움직였다. 박 코치와 데이터팀은 주권의 변화 가능성에 합의했다. 구종을 속구와 체인지업 2개로 줄일 것, 투구수를 15개 이내로 제한할 것. 주권은 어중간한 선발 후보에서 확실한 불펜 셋업맨으로 재탄생했다.

박 코치는 불펜 투수들의 캐릭터를 재탄생시켰다. KT 불펜은 올시즌 ‘투피치’로 승부한다. 주권과 정성곤은 속구+체인지업 조합이고 전유수 이대은 등은 속구+포크볼 조합이다. 확실한 구종으로만 승부한다. 박 코치는 “어중간한 서드 피치는 오히려 투수의 집중력과 제구를 흔들 수 있다. 불펜 투수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투피치 승부가 오히려 구속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 역시 데이터 팀과의 콜라보 효과다. 불펜 투수들의 ‘투피치’는 또다른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박정환 수비코치는 “필승조가 올라올 때는 승부처라는 뜻이다. 수비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불펜 투수들의 투피치가 수비 위치 설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체인지업과 포크볼 모두 타구 방향 예측을 쉽게 만든다. 박 코치는 “포크볼, 체인지업이 약한 타구를 만들었을 때를 대비해 수비 위치를 옮겨 두면 시프트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불펜의 투피치는 포수들에게도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박철영 배터리 코치는 “투피치 투수라면 포수들의 머릿 속도 가벼워진다. 확실한 두 가지 공으로 사인 내고 승부하면서 투수와 포수 모두 깨닫고 배워나가는 게 생긴다”면서 “굳이 여러가지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보다 선수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7월 이후 KT 불펜 평균자책은 2.99로 리그 3위다.

KT 이대은은 마무리 전환 뒤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대은은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뒤 속구와 포크 두가지 구종 위주로 승부한다. 이대은 뿐만 아니라 KT 불펜 투수들이 대부분 투피치 승부다. | KT WIZ 제공

데이터는 선수들의 훈련 목표 설정에 큰 역할을 한다. 지난해까지 마무리였던 KT 김재윤은 ‘데이터 마니아’다. 자신의 투구 데이터를 꼼꼼히 체크한다. 올시즌 부상에서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몸상태, 투구폼 등과 함께 투구 데이터가 중요했다. 전희훈씨는 “지난해 김재윤이 가장 좋았을 때 회전수, 회전방향, 익스텐션 등의 데이터 목표를 두고 거기에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당시 수준으로 100% 회복했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 흔들렸던 김재윤은 최근 10경기 평균자책이 1.46이다. KT 투수 유망주 엄상백도 여전히 좋았을 때의 ‘데이터’를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릴리스 포인트, 익스텐션, 회전 방향 등에 변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구속이 떨어졌다. 전희훈씨는 “데이터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데이터에 변화가 나타나면 우선 선수가 일부러 변화를 준 건지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의도적 변화가 아니라면 코칭스태프들이 변화 원인 등을 분석하고 수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엄상백은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데이터의 역할 중 매우 중요한 또다른 하나는 시즌 중 승부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감소’다. KT는 창단 뒤 매년 순위에 대한 부담감이 발목을 잡았다.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도 제풀에 꺾였다. 데이터는 이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KT 데이터팀은 매일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한다. 전날 등판한 투수들의 투구 데이터를 분석하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긍정적 메시지를 포함한다. 결과가 안 좋았지만 상대 타구 속도를 억제했다든지, 회전수가 유효했다든지 하는 내용이다. 전희훈씨는 “타자들 역시 4타수 무안타였더라도 타구 속도가 좋았다는 내용 등을 넣는다”고 말했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전희훈씨는 “우리 팀이 여전히 실책이 많다. 이 때문에 코치님, 감독님들이 스트레스가 많았다. 사실 우리 팀 마운드의 삼진 능력이 무척 낮은 편이다. 인플레이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 타구 대비 실책을 따지면 우리 팀 실책이 많지 않다. 수비를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을 설명해드렸고, 덕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지신 것 같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데이터는 감독, 코치의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KT 이강철 감독 역시 데이터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시즌 개막 때 이 감독은 유격수 황재균, 3루수 윤석민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격력 강화’를 위한 카드라는 설명이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이 감독은 데이터 팀에게 ‘유격수 황재균, 3루수 윤석민’ 카드의 손익계산을 맡겼다. 시뮬레이션 결과 득실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었다. 데이터 팀의 결과는 ‘마이너스’였다. 이 감독이 그 결과에도 한동안 이 카드를 썼던 것은 유격수 심우준의 자극과 각성을 위해서였다. 어차피 실책이 나온다면 심우준의 실책 보다는 황재균의 실책이 팀 분위기를 덜 가라앉힌다는 판단이었다. 이 감독은 데이터 팀 계산대로 얼마 후 이 카드를 거둬들였다. (대신 심우준을 각성시킨 것은 30경기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내야수 강민국의 존재였다.)

KT 이강철 감독(오른쪽)이 지난 10일 한화전을 승리한 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KT는 지난해 거둔 창단 이후 최다승 59승을 넘어 시즌 70승을 향해 가고 있다. | KT WIZ 제공

KT의 ‘데이터 콜라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KT는 주중 경기가 시작되는 매주 화요일이면 ‘주간 전력 분석 회의’를 한다. 코칭스태프와 전력분석팀, 데이터팀 전원이 모여서 팀 전력에 대한 고민과 분석을 나눈다. 20여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서 KT 선수단 전력의 변화 양상과 공수의 장단점 등을 분석한다. 팀이 한 걸음 나아지는 길을 찾는 과정이다. 야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머리를 맞댄 고민과 노력이다. 한때 야구 바깥으로 여겨졌던 ‘데이터’와 ‘비선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조직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내부 결속이 아니라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이다.

PS. 지난 겨울 신임 이숭용 단장은 “데이터 팀의 시뮬레이션 결과 현재 우리 팀 전력으로 68승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다른 팀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계산 했길래 KT가 68승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나. 무리한 숫자”라고 말했다. KT 데이터 팀의 전희훈씨는 “물론, 완벽한 예측은 아니고, 우리 팀의 전력, 다른 팀의 전력 등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였다. 희망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T는 이미 56승을 거뒀다. 지난해 따낸 창단 이후 최다승 59승에 3승만 남았다. 현재 승률 0.491을 유지한다면 시즌 70승을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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