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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에서 바이칼까지 떠나는 ‘인생 여행’

광활한 태를지국립공원에 서 있는 거대한 ‘거북바위’. 사진|보물섬여행사 제공

‘꿩 먹고 알 먹고’라는 말이 있다. 횡재한 기분이나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가리킬 때 흔히 쓴다. 재미가 있으면서 의미 깊은 여행도 그런 경우다.

여행 버킷리스트를 짤 때면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품어 보는 ‘몽골·바이칼’ 코스. 몽골 게르 숙박과 별보기, 바이칼의 장쾌한 전경, 여기에 두 곳을 잇는 시베리아횡단열차까지. 1석2조가 아니라 1석3조나 1석4조쯤 되는 ‘몽골·바이칼’로의 5박7일 여행은 내딛는 걸음마다 ‘인생의 한순간’을 찍는 꿩 먹고 알 먹는 여행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는 약 3시간40분 걸린다. 국적기는 밤 8시대에 출발이다. 이 때문에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호텔행이다. 이 공항은 몽골의 유일한 국제공항이다. 우리나라 지방공항의 모습을 한 이곳을 대체하기 위해 삼성에서 최신 공항을 건설 중이다.

동화나라의 스머프의 집처럼 느껴지는 카잔 성당. 사진|보물섬여행사 제공

한국보다 1시간 늦는 몽골에서 다음날 오전에는 울란바토르 맛보기 관광에 나선다. 이날 오후 3시20분 울란바토르역을 떠나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역까지 23시간의 열차여행을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의 국립박물관은 기원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몽골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관람관에서 사진·동영상을 찍으려면 5000원을 내야 한다. 수흐바트르 광장은 칭기즈찬의 동상 등 몽골의 역사 인물들이 화석화돼 대제국 몽골의 역사를 증거한다. 결혼하는 몽골인들의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은 기대만큼 아쉬움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사실 여행객에게는 버킷리스트일지 몰라도 그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다. 여행객은 잔뜩 꿈을 안고 승차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이고 열차에 오른다. 결국 열차에는 현실이 오롯하다. 조금은 불편하고, 어떨 때는 갑갑하며, 때로는 화가 난다. 다행인 것은 펼쳐진 전경이다. 우리네와 다른 창 밖 스카이라인은 모두의 눈길을 잡아끈다.

몽골인들의 웨딩사진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은 울란바토로의 수흐바트라 광장. 사진|보물섬여행사 제공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구간을 달린다.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특이하고, 가장 서사적인 철도 여정이다. 열차는 4인실과 6인실로 나뉘어 있다. 각 객실은 남녀 구분이 없고, 누가 여객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여행객에게는 홑이불이 제공된다. 식당칸은 없다. 다만 객차마다 뜨거운 물이 제공된다. 컵라면 등 즉석 음식으로 벼텨야 하는 것.

게다가 새벽에 두 차례 이어지는 러시아 이민국의 인원 체크와 여권·비자 검사는 여행객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한다. 그들은 ‘습관처럼’ 고압적이다. 척박함을 내달려 온 이 열차는 구러시아의 걸작일지 몰라도 21세기 여행객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KTX라면 횡단철도에 대한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듯싶다. 그래서 이 열차는 여전히 버킷리스트다.

인상적인 것은 우리네는 단 한 번이지만 그 삶을 이어가는 한 현지 여행객은 아주 익숙하게 검열원의 지시대로 인형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잠까지 ‘쿨쿨’ 잘 잔다.

한국 여행객들은 몇 개의 컵라면을 먹고 양치와 세수 외에는 자기 몸을 위해 해줄 것이 하나도 없는 공간이지만, 그 어려운 버킷리스트를 치러냈다는 것에 만족할 만하다. 이 또한 지나고 나면 모두가 추억거리다.

이르크추크역은 러시아의 풍취를 물씬 풍긴다. 그 이국의 풍경 속에는 ‘사랑꾼’이 넘쳐난다. 영화 ‘제독의 연인’의 실존 인물인 흑해 함대 사령관인 콜착 제독의 동상이 늠름하다. 그는 불륜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 수도원인 즈나멘즈에는 러시아 황제에 대항하다 유배온 남편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온 여인들이 묻혔다. 그들은 모두 사랑에 목숨을 건 이들이다. 사람들이 사랑꾼이듯이 성당 건물도 예쁘기 이를 데 없다. 그곳 푸르른 카잔 성당은 동화나라의 스머프의 집처럼 느껴진다.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드넓은 바이칼호. 사진|보물섬여행사 제공

다음 여정은 또 다른 버킷리스트인 바이칼 호수다. 2차대전 승전국 몽골은 러시아의 도움에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바이칼을 그들에게 공여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 넓은 호수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늘 맑디맑은 물을 채우고 비우는 바이칼은 지구의 위대한 유산일 뿐이다. 한 번 본 것으로 여행객은 일생의 꿈 하나를 채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는 바이칼이 품은 수많은 전설의 한 가닥조차 알기 어렵다.

넘쳐나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생선구이를 팔고 기념품을 파는 현지인들은 대호(大湖)에 질린 여행객에게 작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에는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등 2500여 종의 동식물이 산단다. 인간은 바이칼로 돈을 버는데, 바이칼은 그 가벼움마저 넉넉히 품어안는다. 그러기에 바이칼은 모두의 축원을 들어주는 지상 최대의 정화수(井華水)가 된다. 장쾌한 정화수! 하지만 호수를 향해 손을 모은 이들의 소망은 그저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평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바이칼호 인근 딸지민속촌에서 전통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다. 사진|보물섬여행사 제공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러시아 군소 앙가라항공의 비행기가 조금은 낯설다. 얼핏 두려움도 밀려든다. 하지만 기우다. 1시간 남짓한 비행으로 다시 찾은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의 허준’이라 불리는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 등을 돌아본 후 태를지국립공원의 게르로 향한다.

그곳에서 양고기를 맛나게 조리한 허르헉을 맛보고 조랑말 체험을 하다 보면 해가 기울고 이내 하늘은 여행객의 수많은 꿈을 담은 별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숱한 별들을 다 헤아리기 전에 여행객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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