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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솔로 데뷔앨범 낸 日 고교생 가수 루안, 소녀는 왜 지금 한국에서 노래를 부르려 할까 [인터뷰]

지난 7월31일 한국 데뷔 싱글앨범 ‘빕빕(Beep Beep)’을 발매한 일본인 가수 루안이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윤중 기자

한일관계가 유례없이 악화일로다. 일본의 무역 보복조치에서 시작된 이 갈등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일본, 일본의 상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크게 키웠다. 많은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처럼 불매운동으로 일본제품 판매량이 급감했고, 일본을 찾는 관광객 수도 끝을 모르고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많은 분야에서 ‘반일(反日)’ ‘반아베’ 를 외치고, 민간의 교류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분야에서는 어떠할까.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가요계에서는 그 흐름이 끊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출신 가수들의 행보에도 그다지 제약은 없다. 지난달 데뷔했던 걸그룹 로켓펀치의 멤버로 합류한 AKB48 출신의 다카하시 쥬리에 대한 한국팬들의 응원은 여전하다. 하지만 한국에 자신을 소개하려고 했던 신인들에게는 지금의 분위기가 차가운 겨울의 서릿발보다 더 춥게 여겨지기도 한다. 올해 만 16세의 일본인 여고생 가수 루안에게는 특히 그렇다.

루안은 지난 7월31일 일본 솔로가수로는 처음으로 앨범을 한·일 동시 발표했다. 싱글앨범 ‘빕빕(Beep Beep)’은 한국 데뷔 앨범이기도 하다. 트와이스 등의 히트곡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블랙아이드필승이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안무는 K팝 인기곡들의 담당한 안무가 리아킴이 힘을 보탰다. 아이즈원, 갓세븐, 노라조 등의 뮤직 비디오를 만든 디지페디가 뮤직 비디오를 연출했다. 하지만 앨범 발매 시기가 안좋았다. 하필 한·일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많은 방송사들이 일본인 가수인 루안의 출연을 조심스러워했고 몇몇 페스티벌이나 버스킹의 기회도 날씨 때문에 노래 조차 부르지 못했다.

악전고투를 각오한 그의 한국 활동과 딱한 현실이, 기자가 루안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것은 계기다. 그는 왜 이러한 시기에 한국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걸까.

“2015년 일본에서 데뷔해 활동을 시작했어요. 음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해외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K팝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지난 7월31일 한국 데뷔 싱글앨범 ‘빕빕(Beep Beep)’을 발매한 일본인 가수 루안이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윤중 기자

루안이 K팝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트와이스가 ‘TT’로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수많은 여고생들이 마치 울먹이는 듯한 ‘TT’의 포즈를 따라할 때 루안 역시 그 나이또래처럼 K팝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팬의 입장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작사, 작곡과 연주를 하는 뮤지션이기에 K팝을 깊이 탐구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에서 나오는 긴장감, 군무를 통해 보이는 일사분란함의 매력이 그를 사로잡았다. 당장 K팝의 많은 곡들을 따라부르기 시작했고, 한국 노래는 한국어로 불러야 제 맛이라는 생각에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춤을 많이 따라췄는데 다리가 아파서 학교를 쉬는 기간이 생겼어요. 기타도 그때 독학으로 배웠고, 한국어도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주간아이돌’이었는데 직접 따라 말하고 자막도 보고 번역도 하면서 익혔어요. 어느 정도 한국말을 잘 할 수 있게도 됐어요.”

그에게는 한국 활동이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한국은 그에게 여행지에서 활동지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가수로서 활동하며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 아이유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다. 계획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한국 활동을 준비할 때만해도 한국에서 일본인 아이돌 멤버들의 활동 역시 활발했다. 일본 내 주류 중의 주류인 AKB48 사단의 가수들도 한국 도전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올 여름부터 한일관계는 급격하게 경색됐다. 건강상의 문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미 만들어 놨던 앨범을 올 7월에 낼 수밖에 없었던 루안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한국 활동에 발목을 잡는 직격탄이 됐다. 그가 데뷔한다는 소식에는 좋지 않은 댓글이 달렸고, 그나마 좋다고 하는 의견 역시 “왜 지금 이 시기에 데뷔를 하려 하느냐”는 충고와 궁금증이 줄을 이었다.

지난 7월31일 한국 데뷔 싱글앨범 ‘빕빕(Beep Beep)’을 발매한 일본인 가수 루안이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윤중 기자

“제 기사에 대한 댓글도 많이 읽었어요. ‘왜 이런 시기에 나오냐’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슬펐죠. 이미 그렇게 됐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러한 반응 속에서도 일본인인 저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걱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이 연습을 해서 한일관계가 더 좋아지면 많은 한국분들께도 제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단순히 K팝이 좋아서 한국이 좋아졌고, 좋아하는 나라에 와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녀의 단순한 소망은 두 나라의 관계악화라는 거대한 악재에 부딪쳐 표류 중이다.

모든 것이 적대적이고 반목하는 분위기인 이때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마저 외면을 받아야 할까. 오히려 그들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진짜 대한민국 사람들의 의중을 일본인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기대할 순 없을까. 정치와 문화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명제가 요즘 같은 시기처럼 균형감 있게 고려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는 유튜브를 자주 보다 보니 언어는 벽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정치와 음악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음악을 좋아해 한국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요. 물론 일본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많은 분들이 제 음악을 음악으로만 볼 수 있도록 많이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 기타뿐 아니라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장르에 심취해 관련 악기도 마련하고 있는 그는 올해 안으로 ‘빕빕’과는 다른 분위기의 신곡을 준비해 도전을 이어갈 생각이다.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치즈볼을 먹고, 치즈 닭갈비를 먹는 일”이라고 답하는 소녀에게, ‘불닭볶음면’ 같은 세상는 난제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을 동경해 시작한 루안의 여정에 응원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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