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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아하 그렇구나] 불면, 교란된 생체시계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과 잘못된 생활습관 교정이 최우선

우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내원한 38세 남자가 야간 불면과 주간 무기력감을 호소한다. 제법 잘나가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지만, 실제 매스컴에서 접했던 모습과 다르게 상당히 어두운 표정이다. 이미 타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약물을 복용 중이나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이 환자의 모든 증상을 우울증의 일환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적절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고통은 왜 지속되는가? 이를 풀어줄 실마리는 수면 시간을 포함한 생활습관에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주은연 교수

원래 야행성 기질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고, 사진작업과 관련된 회사를 다닐 때는 늦은 출근이 허용되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3년 전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 수면시간이 불규칙해 진 것이다.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없고 새벽에 자거나 혹은 초저녁에 자야 하는 날이 늘어났다. 첫 해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점차 원하는 시간대에 자는 게 쉽지 않아 수면제나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수면제를 복용한 다음날에는 머리가 멍하여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술에 의존하면서 기억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더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건강했으나, 프리랜서를 하는 3년간 체중은 15㎏ 이상 증가하고 고혈압, 지방간, 이명까지 갖게 되었다.

뇌 안 시상하부에는 ‘생체시계’라고 하는, 체 내 모든 리듬을 조절하는 중앙시스템이 있다. 태양에 대한 지구의 자전주기인 24시간과 괘를 같이 하여 약 24.2시간의 하루 주기리듬을 갖는다. 어두워지면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깨어나 돌아다니는 건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지켜오던 생활양식이었다. 100여 년 전 전구가 개발되어 밤이 낮같이 환해지고 밤에도 계속 깨어있는 문화가 번성하면서 인간의 생체시계가 교란되기 시작했다. 산업의 발전으로 직업이 세분화되고,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할 수 없는 직종이 늘어나게 되고, 불규칙한 수면시간이 불규칙한 식이습관 (끼니 건너뛰기, 야식, 폭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점차 심신의 리듬이 깨지고 생활도 건강도 엉망진창이 된다. 생체시계 교란으로 인한 여러 폐해가 속출한다. 예전에 없던 만성 질병이 늘어나고, 불면증도 급속도로 증가한다. 산업화가 진행된 선진국일수록 불면증 약물시장은 블록버스터 산업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온 어떤 혁신적인 약물도 불면증을 완치시켰다는 보고는 없다. 억지로 잠을 재우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장기 복용으로 인한 약물의 부작용과 의존성도 속출한다. 불면증 약제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인 치료는, 바로 교란된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진단 방법은, 수면·각성 시간을 측정하는 장비를 손목에 채워서 2주 이상 관찰하는 것이다.

수면일지에 약물, 식사, 간식, 술, 커피와 같은 모든 식이의 섭취 시간과 종류를 기록하게 한다. 2주간의 기록을 보니 마치 한국, 미국, 싱가포르로 여행을 다닌 사람처럼 수면 시간대가 매우 불규칙했다.

식사를 건너뛰는 건 예사이며 하루에 한 끼만 먹기도 하고 야간에 커피를 계속 마시거나 에너지음료를 들이킨 횟수도 잦았다. 항우울제도 제 시간에 먹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생활이 무질서하고 불규칙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푸는 첫 단추로, 불규칙한 업무일정을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환자는 프리랜서 일의 특성으로 일정한 시간에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건강을 다 잃은 후에 얻은 경제적 성취나 사회적 명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행히 환자는 곧 생체시계 회복 프로그램 참여에 동의했으며, 최대한 일정할 수 있는 수면-기상 시간을 정하여 따르기 시작했다. 자고 깨는 시간이 일정해지면, 식사시간과 약 복용시간도 자연스럽게 일정해 진다. 점차 폭식과 야식도 줄어들어서 체중도 감소했다. 술과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게 되고, 낮의 졸음, 무기력, 피곤도 훨씬 좋아졌다. 정상화된 생체시계는 생체리듬을 최적화시켜서, 업무의 효율성도 높인다. 치료 6개월째, 항우울제 용량도 줄였고 환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의욕적이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규칙적인 수면주기와 규칙적인 생활습관, 건강관리를 위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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