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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희의 문화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갑을계약서’ 대신 ‘인연계약서’를…

이사하던 날, 주방을 정리하는 아주머니가 크고 무거운 변압기를 옮기다 떨어트렸다. 고정된 나사가 풀려 있어서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것.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났다. 발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무게였다. 다쳐서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 바닥에 난 흠집에 더 속상해했다.

이사 전에 물건을 점검하는 것은 소유자의 책임이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아주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발매트를 찾아 찍힌 자국을 슬그머니 가려놓았다. 내가 가린 것은 바닥이 아니라 내 표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나 역시 흠집이 걱정돼 관대한 미소가 잘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내가 아주 일찍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카메라’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홍보대행사에 다녔다. ‘실장님’의 지시에 따라 그분의 아들을 돌보며 부산에 있는 ‘실장님의 시댁’에 들른 후 그 지역의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식으로 일했다. 쥐꼬리만한 월급은 제때 나오지 않았으며, 일은 너무 많고 버거웠다. 일이 넘치면 학생들을 뽑아 차비만 주고 중요한 일을 시키는 회사였다. 명절에는 인턴사원들이 실장에게 아부성 선물을 들고 출근했다. 그 시절에는 그런 회사가 많았다.

실장님의 커다란 가방을 더 이상 대신 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용감한 대리였다. 우리는 출근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였다. 실장은 내게 카메라를 요구했다. 대리주차를 맡긴 날 카메라가 없어졌는데, 카메라를 방치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다. 새 카메라를 사오면 밀린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그 안에 ‘우리 아들의 돌잔치 사진’이 들어 있는 것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곧이곧대로 같은 모델의 카메라를 사 갔다. 다르단다. 분실된 카메라는 ‘메이드 인 재팬’이고 이건 아니란다. 결론은 월급지급 거절.

노동청에 가면 되는데 그때 즈음에는 너무 화가 났다. 노동청 대신 구청에 가서 사업자등록을 해 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었다. 자격도 없이 너무 일찍 올라선 ‘갑’의 자리. 사람들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었다. 서른 살이 되기 직전 회사를 팔고 도피성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오래도록 ‘을’로 살아왔다.

지나친 갑질 뉴스가 화제일 때 가해자를 흉보는 우리 대부분이 ’나는 그런 적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행한 크고 작은 폭력들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처지를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 탓이다. 갑은 을에게, 을은 갑에게 각각 전도된 오만을 갖고 있다.

최근 여러 사람과 계약서를 작성할 일이 있었다. ‘갑을계약서’가 아닌, ‘인’과 ‘연’을 쓴 ‘인연계약서’다. 모두들 미소 지으며 흔쾌히 서명해 주었다. 눈을 맞추고 오래 악수를 나누었다. 응시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로의 결핍이 그렇다. 배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정재희는 누구?

정재희는 문화예술기획자다. 현재 한국 늘상예술 망원동창작가들 소속으로, 일본 컬처컨비니언스클럽 문화 MD로도 활동하고 있다. 앞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을 진행하고 스타응원단을 운영했으며, 팀라루나 대표로서 ‘DDP 서울컬렉션’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등의 쇼 기획과 운영을 맡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신차 발표회와 음반 쇼케이스, 패션쇼, 북콘서트 기획·운영·음악감독 등 다방면에서 재주를 뽐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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