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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스포츠IN] 코앞에 다가온 체육회장 선거가 ‘시한폭탄’인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지자체들이 모두 체육회장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내년 1월15일까지 체육회장을 새로 뽑는 선거입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체육회장은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맡았지만 내년부터는 안 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지 못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 체육회가 체육회장을 새로 뽑습니다. 체육인들은 지금까지 선거로 회장을 뽑아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시도체육회도 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시한 폭탄급 선거 규정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공약 선거가 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가장 큽니다. 공약을 공개해야 한다는 문구, 선거 규정 어디에도 없습니다. 선거 비용이 부족해 인쇄물도 만들지 못하게 합니다. 후보자가 선거 직전 10분 안팎 소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을 뿐입니다. 체육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소견을 밝힐 수 있게 했지만 그건 유세방법으로 홈페이지가 제시됐을 뿐입니다. “공약을 의무적으로 명기해야 한다” “공약은 문서로 보존돼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선거 운동은 열흘 동안만 할 수 있습니다. 선거권을 가진 대의원은 적게는 50명, 많게는 500명 이상입니다. 열흘 동안 후보자가 모든 대의원을 직접 만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공약을 의무적으로 공개 게시하는 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야만 ‘누구의 측근이라더라’ ‘지자체장이 밀어주는 사람이라더라’ ‘돈이 많은 사람이라더라’ 등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식 풍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공약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보고 회장을 뽑을 수 있을 겁니다.

선거 기간 중 후보자는 대의원을 개인적으로 만나 공약을 밝힐 겁니다. 걱정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공약이 법과 조례상 실제로 시행 가능한 것인가입니다. 경기 단체 수장이 다수인 대의원에게 가장 큰 유혹은 체육시설 관리권을 받는 겁니다. 그래야 대관 등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각종 대회를 마음대로 치르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체육시설 관리 위탁 문제를 체육회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자체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체육시설 관리 위탁을 임의로 약속하는 회장은 조례에 맞지 않는 걸 약속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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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가 대의원을 개인적으로 만나면서 온갖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도 걱정입니다. 대의원마다 이런저런 걸 약속한다면 그건 지방 체육 발전보다는 대의원 개인, 개별 종목 기득권 지키기로 연결될 공산이 큽니다.

설사 공약이 확실히 공개된다해도 문제는 여전합니다. 공약 실효성을 검증할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책공약단이 운영됩니다. 실효성을 갖춘 공약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체육회장 선거에는 공약단이 없습니다. 즉, 후보자가 실효성이 없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공약해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공약이 公約이 아닌 空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입니다.

체육회장 공약은 앞으로 위축될 체육계 상황을 고려하면 정말 중요합니다. 현재 체육회 예산은 90% 이상 지자체에 의존합니다. 지자체장 체육회장 겸직 금지 법안이 시행될 경우, 체육 정책에 대한 지자체장의 관심이 줄어들게 뻔합니다. 체육회 예산이 줄고, 지자체 소속 운동부가 축소, 해체될 공산도 큽니다. 그래서 이번 체육회장은 장기적으로 지자체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도 제시해야 합니다. 체육회장이 어떤 비전으로 어떤 정책을 시행하느냐가 향후 체육회가 행정적, 재정적으로 진정하게 독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겁니다.

이번 체육회장 선거는 많은 게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뤄집니다. 모든 게 체육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보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대중적으로 명분이 그럴듯한 법 개정을 밀어붙인 국회의원들의 포퓰리즘식 정치에서 비롯됐습니다. “체육을 정치에서 독립시키겠다”는 취지로 개정한 법률이 오히려 체육회장 선거를 공약 선서가 아니라 관권 선거, 세 과시 선거, 금권선거 등 돈과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몰아가는 상황입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김대희 박사는 “처음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지방체육회 특성을 잘 이해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며 “이대로 선거가 치러지면 지방체육은 극심한 후유증 속에 붕괴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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