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니카 역사를 써내려간 유서 깊은 전자음악 명문 워프(Warp) 레이블 음원들이 리플레이뮤직을 창구로 한국에도 소개되고 있다.
영국 전자음악 레이블 워프(Warp)는 단순한 레이블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를 주도해나갔다. 급진적인 소속 뮤지션들을 바탕으로 일렉트로니카 진화를 부추겼고 정교한 프로모션, 그리고 비디오와 삽화 등 아트 디렉팅을 통해 창조적인 충격을 꾸준히 음악씬에 주입했다.
1989년, 영국 셰필드에서 롭 미첼(Rob Mitchell)과 스티브 베켓(Steve Beckett)에 의해 워프가 설립됐다. 초기에는 LFO와 나이트메어스 온 왁스(Nightmares on Wax) 등을 릴리즈했고 1992년 시작된 ‘Artificial Intelligence’ 시리즈를 통해 레이블의 지명도가 올라간다.
IDM은 빠른 BPM의 하드 테크노 씬이 유행하던 도중 주목 받았는데 당시 워프는 라이징 하이(Rising High), R&S와 함께 3대 테크노 레이블로 소개되곤 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워프 레코즈는 변함없이 자신의 미의식을 관철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워프, 그리고 소속 아티스트들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전자음악의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제시해냈다.
상업성, 혹은 화제성을 뒤로 하고 묵묵히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고, 이는 워프라는 레이블이 음악사적 측면에서도 큰 업적을 세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대에서부터 이미 워프는 명확한 색상을 지니고 있었고 더불어 ‘UK 전자음악의 명문’으로 불려지게 된다. 그 무렵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과 스퀘어푸셔(Squarepusher), 플레이드(Plaid)의 전신 블랙 독(The Black Dog)은 댄스플로어를 무시한 독특한 리듬과 환상적인 멜로디라인을 특징으로 한 IDM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 흐름은 보다 수학적인 오테커(Autechre), 그리고 보다 몽환적인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로 이어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워프는 서서히 레이블 컬러를 확장한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뮤직의 가능성을 넓히는 여러 장르도 횡단해냈다. 이를테면 막시모 파크(Maximo Park), 배틀스(Battles), 무엇보다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와 브로드캐스트(Broadcast) 같은 전자음악과 상관없는 하지만 걸작을 만들어낸 밴드들을 워프에서 성장했다.
비비오(Bibio)의 경우 처음엔 전자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밴드적인 부분을 넓혀가고 있기도 하다.
힙합 아티스트들 또한 일부 수용했다. 안티팝 컨소시움(Antipop Consortium)을 시작으로 급진적인 대니 브라운(Danny Brown), 무엇보다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경우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와 함께 현 워프의 얼굴이라 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영화배우로 더 유명한 빈센트 갈로(Vincent Gallo)의 솔로 포크 앨범들이 워프에서 발매된 것 또한 신기한 사례였고,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몇몇 엠비언트 작품을 워프를 통해 발매하며 워프를 자신의 계승자로 점 찍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시대를 견인해온 혁신가 라디오헤드(Radiohead)와 워프와의 관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라디오헤드의 걸작 ‘Kid A’의 경우 이들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듯 에이펙스 트윈과 오테커의 영향아래 완성된 작품이었으며, ‘King of Limbs’ 제작 당시에 플라잉 로터스 도움을 받기도 했다. 워프에서 발매된 마크 프리처드(Mark Pritchard)의 2016년 싱글 ‘Beautiful People’에 톰 요크(Thom Yorke)가 참여하기도 하면서 워프와의 관계는 지속된다.
워프는 개성적이고 또한 지능적인 소속 아티스트들이 흔들리지 않고 음악활동을 할 수 있게끔 터전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그런 기본베이스는 테크노의 최첨단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이어져나갔다.
그것이 워프의 원동력이자 그들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이다.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워프는 씬에서 가장 선두에,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사운드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