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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는 벨 감독, 고맙다는 선수들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과 선수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여자축구대표팀 첫 외국인 사령탑인 콜린 벨 감독(58)은 ‘행복 전도사’라는 별명이 생겼다. 훈련을 마치고 선수들에게 어눌한 한국어로 “기분 어때요? 피곤해요?”라고 물은 뒤 “난 행복해요”라고 스스로 답한 게 큰 화제가 됐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명장은 리더십의 첫 걸음을 소통으로 선택했다. 벨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 일상과 훈련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쓴다. 부임 2개월 만에 선수들의 이름을 외웠다. 포메이션이 그려지던 전술용 칠판에 선수들의 이름을 직접 한글로 쓸 정도다. 정식으로 한글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자음과 모음을 마치 숫자 ‘0’과 ‘1’의 조합이 전부인 디지털 세계처럼 해부해 한글 솜씨를 뽐낸다.

공격수 여민지(26·수원도시공사)는 “감독님이 ㅎ을 쓸 때는 1이 2개 겹치고, 그 아래에 0이 있다고 외우시는 형태”라고 말했다.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때는 당연히 통역을 통해 진행하지만, 감독님은 1년이 지나면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게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부연 설명이었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외국인 지도자가 없었던 터라 선수들과의 유기적인 호흡과 신뢰 관계 형성에 붙었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뀐 순간이다.

벨 감독의 리더십 효과는 선수들의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 선수들은 벨 감독과 훈련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여민지는 “사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을 평소에 잘 안하지 않느냐”며 “문화 차이를 걱정했는데, 거꾸로 내가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주신 고마운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미드필더 장창(23·서울시청)도 “외국인 감독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며 “내 이름이 특이하다고 가장 먼저 외워주셨는데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고 웃었다.

벨 감독과 선수들의 행복은 힘겨운 훈련도 이겨내는 비결로 이어진다. 벨 감독이 부임한 이래 훈련 시간이 전임 감독 시절보다 늘어났지만 힘들다는 기색은 없다. ‘캡틴’ 김혜리(29·인천현대제철)는 “감독님이 한국어로 ‘넌 할 수 있어’ ‘믿는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 해주시니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하루 빨리 벨 감독에게 첫 승리로 보답하고 싶어한다. 지난 10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중국과 1차전에선 0-0으로 비겼지만 15일 대만과의 2차전은 필승의 각오다. 장창은 “감독님의 데뷔전인 중국전을 놓쳤으니 대만전에선 꼭 이기고 싶다”고 전했다.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의 이름을 직접 한글로 쓴 칠판 |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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