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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민의 소도마을 신농일기] 내가 지켜야 하는 나다움

일월몽유도, 130×90㎝, 한지에 옻칠, 2019.

누구나 비슷한 기억이 있겠지만, 나는 어릴 때 가족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와서 그렇다거나 고개 너머 마을에서 업어 와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러면 내가 봐도 식구들 누구와도 닮지 않은 한 아이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외꺼플 자그마한 눈, ‘비가 오면 비가 들이치겠다’라고 어른들이 놀리는 콧구멍이 훤히 작은 납작코, 넓고 펑퍼짐한 이마…. 게다가 엄마가 정말로 바가지를 씌워 놓고 머리카락을 바가지 선을 따라 잘라 주셨기 때문에 나는 겉으로는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 수가 없는 모습을 하고 다녔다. 장차 커서 어찌 될지 기대되지 않는 그저그런 외모라고 늘 생각했다.

아무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참 외롭게 했다. 집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가족에게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도 나는 가슴에 꼭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속으로 ‘크면 꼭 예뻐질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렇게 어른이 된 후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사이즈에 나를 욱여 넣으려고 했다. 아무리 발이 아파도 꼭 하이힐을 신으려 했고, 몸이 불편해도 몸매를 뽐내려는 듯한 옷을 고집하기도 했다.

언젠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렇게 자라온 날들을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힌 적 있다. 그러자 언니는 “우리 모두 외로워서 그래”라며 함께 울어줬다.

사실 나도 안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같은 식구라도 안 닮을 수 있고, 남처럼 닮지 않았어도 식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안다. 또 그런 기분은 나뿐 아니라 같은 식구들 안에서 따로 느끼는 기분일 수도 있다. 즉 가족의 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가족끼리는 미주알고주알 말해 주지 않아도 다들 눈치를 챈다. 귓속말로 소곤소곤 뭐고 어떻고 뭐가 저렇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가족을 떠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나다운 것은 뭘까?’ 그것은 내가 지닌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족 중에서 인물이 좀 빠져도 식구임을 부정할 수 없듯이 허물이 좀 있어도 이 사회 구성원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허물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선물이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있는 허물은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기만의 사연이 곧 개성이고, 그 개성 속에는 가능성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자존심의 꽃이 떨어지면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다만 자존심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자존감을 잃지 말고서….

■오늘의 그림은?

멈추어 다름 아닌 나를 다독이는 시간.

익숙한 과거의 곳곳을 낯설게 다녀왔어요. 꿈을 꾸듯 나풀대며 뛰어다녔지요. 그 순간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날아 보지도 못한 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말해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쩐지 ‘지금 떠나’와 ‘지금 돌아가’라는 비슷한 말인 것 같아요.

떠나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니 촉촉한 초록 날. 초록 숲에 초록 집을 짓고, 초록 주전자에 물을 끓여 그 물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창가에 앉아 초록·초록 하고 말하고 싶은 느낌이에요.

■전수민은?

전수민(田秀敏, Jeon Soo Min)은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그린다. 전통한지와 우리 재료를 이용해 우리 정서와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는 한국화가다.

한국은 물론 미국 워싱턴DC 한국문화원, 프랑스 아리랑갤러리, 이탈리아 베네치아 레지던스, 중국 LOTI X HUMMI 디자인 박물관의 초대전을 비롯한 17회의 개인전 그리고 일본 나가사키현 미술관, 뉴욕 등의 단체전 90여 회, 각종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직 듣지 못한 풍경>(2012), <일월산수도>(2013), <일월산수도-피어나다>(2014), <일월연화도>(2015)(2016), <일월부신도>(2017), 명감 <일월초충도>(2018), <일월모란도>(2018), <일월몸유도>(2019) 등이 있다.

현재 화천소도마을 대안학교 ‘신농학당’의 교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다. 또한 그림 수필집 <이토록 환해서 그리운>(2016)과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2017)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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